이 책의 제목은 오로지 '카이사르'일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 - 콜린 매컬로(교유서가)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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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를 높이 던져라!



. 교원문고에서 나왔던 '로마의 일인자'와 '풀잎관'을 읽었던 게 고등학교 때였는지 대학교 때였는지조차 슬슬 헷갈리고, 우연히 수원 남문의 헌책방에서 두 시리즈를 발견해 사들고 온 것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 때는 판매가 신통찮았는지 아쉽게도 총 7부 중 2부 '풀잎관'까지 밖에 나오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교유서가로 출판사가 바뀌고 시리즈 이름도 '마스터스 오브 로마'가 되면서 3년만에 본편 6부작에 외전인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까지 22권이 모두 재출간되었다. 정말 감사한일이다. :)


. 마리우스와 술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시리즈는 어느 새 수십년을 지나 1부에선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카이사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 카이사르는 모든 적을 물리치고 일인자의 자리에 앉기 직전의 위치까지 다가가는데, 그런 그는 정치면 정치, 전쟁이면 전쟁에 인성과 유쾌함까지 모두 갖춘 완성형의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갈리아 전투와 로마 진격과 파르살로스 회전에 이르기까지 이 시리즈에서 그 어떤 경쟁자들도 그를 갈등이나 고뇌에 빠뜨리지 못한다. 처음부터 유약하게 묘사되었던 키케로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징징대는 카토는 그렇다쳐도, '이전 세대의 일인자'이자 카이사르 평생의 맞수로 그려졌어야 할 폼페이우스도 카이사르에 비해서는 몇 수 아래의 인물로 묘사된다. 실제 계속 전쟁을 치러왔던 카이사르의 최정예 병력에 맞서 은퇴한 지 10여년 가까이 된 퇴역병들을 이끌고도 다라키움에서 카이사르의 허를 찔러 거세게 몰아쳤던 폼페이우스의 역량을 생각하면, 이런 묘사는 좀 억울하게까지 느껴진다.




나는 장발의 갈리아에 돌아가서도 그 곳의 모든 이들이 나를 - 그리고 로마를 - 인정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으리라. 왜냐면 내가 로마이니까. 하지만 나보다 여섯 살이 더 많은 내 사위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로마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착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여, 문단속 잘하시오. 당신이 로마의 일인자로 남아 있을 기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카이사르가 간다.

- 1권, p. 30.



. 생각해보면 이전 시리즈였던 '포르투나의 선택'에서도 작가는 이런 전개를 감안하고 있었던 듯 - 아니면 콜린 매컬로는 폼페이우스가 정말 그다지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 세르토리우스와의 스페인 전역에서 폼페이우스의 군사적 재능을 한 차례 사정없이 깎아내렸던 적이 있다. 세르토리우스야 마리우스의 군사적 후계자이고 군사적 역량으로는 술라에도 딱히 뒤떨어지지 않는 인물이니 그렇다쳐도, '새끼돼지' 메텔루스만도 못하게 나오는 건 좀 너무하다 싶었는데, 이번 시리즈에서도 파르살로스의 패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직접 '그는 조직관리를 괜찮게 해낼 뿐 군사적인 재능은 없다'며 확인사살해버린다. 작가의 선택은 냉정하고, 선택받지 못한 인물에 대한 묘사는 읽는 사람이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가혹했다.

. 경쟁자들이 모두 몇 수 아래이기에 이번 시리즈에서 유일한 적은 카이사르 그 자신이다. 합법적으로 로마의 일인자가 되고 싶고 자신에게 반기를 든 인물까지도 포용해야 한다는 갈등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원동력이고, 그런 내면의 갈등에 비한다면 다라키움이든 파르살로스든 그렇게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는 듯 매컬로는 이런 전투들을 그저 훑고 지나가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오히려 전쟁터까지 가는 과정과 그 시간동안 고민하는 이야기들이 훨씬 길고 길게 묘사된다.




우리 쪽에도 그 쪽에도 반역자는 없어. 그저 서로 로마의 미래를 다르게 보고 있을 뿐이야. 난 내가 사면한 사람들이 로마에서 직책을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는 내게 도전하길 바라. 술라는 틀렸어. 반대 없이 최고의 일을 해내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네. 난 정말이지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이고 싶지 않거든! 난 제대로, 즉 끊임없이 분투하면서 로마의 일인자가 될 거라네.

- 3권, p. 157.




. 덕분에 1-2부의 역동적인 전투들을 떠올리며 과연 이 역사적인 전투들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기대하던 독자들은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내전에서 마리우스가 쓰러지기 직전에 이탈리아 동맹군을 상대로 거뒀던 전술적 완승이나, 술라가 풀잎관을 받던 혈전의 묘사를 기억한다면 이번 시리즈에 '박진감 넘치는 전투묘사' 운운하는 데는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고, 오히려 밋밋한 전투 묘사를 이번 이야기의 아쉬운 점으로 꼽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시리즈 초반부터 폼페이우스를 카이사르의 경쟁자로 부각시켜 줄 마음이 전혀 없었고 마지막까지 그 생각은 확고했으니, 카이사르와 싸운 전투에도 그렇게 큰 비중을 둘 수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보면 역시 이번 시리즈의 제목은, 어떤 수식도 붙지 않는 '카이사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갑자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메난드로스의 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주사위를 높이 던져라!" 그는 그리스어로 크게 외치더니 발부리의 옆구리를 부드럽게 찼다. 그리고는 루비콘 강을 건너 이탈리아 속으로, 반란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 3권, p.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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