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야구공 하나 잡는 거랑 비교하면 널 잡는 건 일도 아니지. 땅 짚고 헤엄치기라니까.
. 미야베 미유키나 온다 리쿠와는 달리 지금은 완전히 묻혀버렸지만 한 때 일본소설들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이사카 월드'가 흥행하던 적이 있었다. 데뷔작 '오듀본의 기도'부터 '피쉬스토리', '골든슬럼버', '명랑한 갱' 시리즈 같은 초기작에선 구로사와나 이토, 노부부 같은 인물이나 허수아비, 늙은 시바견 같은 상징들이 여러 작품에 공유되면서 작가의 수고를 덜어주기도 하고, 독자에게 선사하는 팬서비스로 활용되기도 했다. 피쉬 스토리에 실린 네 편의 단편에도 빠지지 않고 전편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아예 몇몇 이야기는 이전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마침 단편이기도 하니 약간 힘을 빼고, 그동안의 이사카 월드를 정리하는 겸 해서 여유를 가지고 써내려 간 게 아닐까.
. '동물원의 엔진'은 부담없는 단편이었다. 밤에는 동물원 바닥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는 플래카드를 들고 아파트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전직 동물원 직원에 대한 이야기인데, 미스테리를 중심으로 장난기 있는 반전이나 판타지 같은 부분도 간간이 들어가 있다. 아마도 이런저런 요소나 기법에 대해 연습하던 시절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은데, 이 단편에는 오듀본의 기도에 나오는 이토나 러쉬 라이프에 나오는 가와라자키가 등장한다.
. '새크리파이스'는 러쉬 라이프에 나왔던 빈집털이범이자 히어로였던 구로사와가 탐정으로 나와 한 산속마을의 비밀을 풀어가는 이야기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경쾌하고 코믹하게 진행되면서도 이야기 자체는 묵직하다. 한 마을이라는 건 '나름대로 우주의 질서가 내포되어 있는 공동체'이고, 결국 공동체를 끌어간다는 건 좋은 정치라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지는 이야기.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보면 장편보다는 단편이 낫고 장편 중에선 짤막짤막한 이야기가 맞물리는 쪽이 좋은데, 이 작품도 단편이라서 다행(?)이라는 느낌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장편들을 봐도 '마왕'은 너무 무겁고, '사막'은 너무 직설적이라.
정보라는 건, 진실의 정도나 증거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요에 반응하는거야.
- 새크리파이스.
. 표제작인 '피쉬스토리'는 이사카 코타로가 한때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통해 서로 이어지는' 구성인데,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고 책을 좋아하는 쪽에선 보통 원작 있는 영화를 보면 이러쿵저러쿵 트집을 잡고 싶어지는데(^^;), 이 작품은 원작을 읽었더니 영화화가 잘 되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원작이 이상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처럼 원작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살려내면서도 코믹한 부분을 살짝 얹는 게 정말 좋았고, 작가와 웃음의 코드가 맞는건지 감독이 추가한 부분의 위화감이 거의 없는 것도 좋았다. 아무튼 록과 액션이 결합된 신나는 작품이고 "정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한 육체와 흔들림 없는 마음, 그것들을 익히는 준비"라는 메시지도 약간은 허세같으면서도 그럴싸하기도 했고. :)
. 마지막 작품인 '포테이토 칩'은 앞 이야기들과 달리 어깨에 힘을 빼고, 이사카 코타로 특유의 부풀리고 비트는 말장난으로 가득 채운 작품이다. 자살하려는 여자를 이런저런 헛소리로 막는다거나, 등장하는 인물이 스스로 삼각형 각도의 총합이 180도라는 거나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깨닫는 장면이 웃기게 표현되다가, 결국은 홈런 한 방의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라고 쓰면 뭔 소린가 싶겠지만, 정말 이런 이야기이기 때문에. :) 이사카 코타로니까. 믿으며 따라가다보면 어떻게든 해결된다고 밖에 할 수가 없다^^;;;; 실제로 지금은 아니지만, 전성기의 이사카 코타로는 그런 신뢰를 주는 작가이기도 했으니까.
. 이렇듯 그 동안 나왔던 인물들을 아낌없이 등장시킨 덕에 이사카 코타로의 초기작부터 죽 따라온 독자라면 반갑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고, 읽다보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중간중간 재미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법' 같은 게 눈에 보여서, 이런 효과를 위해서는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쓰면 되겠구나 하는 게 어렴풋이 잡히는 점이 재미있다. 물론 여기에 더해서, 즐겁고 경쾌하다는 건 당연하다. 그게 이사카 코타로니까. :)
"받아?10층에서 떨어진 사람을? 그 사람 혹시 슈퍼맨이라도 되냐?"
"슈퍼맨?" 그 말에 이마무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애도 아니고, 무슨 그런 맹꽁이 같은 소리를 해. 우리 형님은 평범한 중년 남성이라니까."
"떨어진 나를 그 중년남자가 받을 작정이라는 거야?" 여자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렇다고 무사할 것 같아?" "괜찮아."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지 말라니까. 죽는 마당에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중년 남자한테 부딪혀 죽어야 하는데? 날려버릴테다!"
"두목은 고교 야구 출신이래. 게다가 외야수였어." "그래서 뭐?"
"플라이 볼을 잡는데는 도가 트인 선수였다던데, 조그만 야구공 하나 잡는 거랑 비교하면 널 잡는 건 일도 아니지. 땅 집고 헤엄치기라니까."
"그거랑 이거랑은 전혀 달라."
"대부분 후보선수로 있었다고는 하던데."
"후보라니!" 여자가 대번에 펄쩍 뛰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떻게 되든 난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