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 - 윌리엄 셰익스피어(민음사) ●●●●●●●○○○
위험한 상상은 그 본질이 독약인데
맛이 고약한 줄 처음엔 거의 모르다가
약간씩 핏속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유황불처럼 타는 거야. 그렇다고 했잖아.
이야고) 당신께서 부인의 사랑을 구했을 때 마이클 카시오가 당신의 사랑을 알고 있었던가요?
오셀로) 알았지, 처음부터 끝까지.... 왜 묻나?
이야고) 제 생각을 확인해 보려는 것뿐이고 나쁜 뜻은 없습니다.
오셀로) 자네 생각이 어때서?
이야고) 전 그가 부인과 안면이 없었다고 생각했죠.
오셀로) 있었고 말고, 중매 역을 여러 번 했으니까.
이야고) 몸소요?
오셀로) 몸소요? 몸소 했지. 뭐 짚이는 게 있는가? 그가 정직하지 못한가?
이야고) 정직해요, 장군님?
오셀로) 정직해요? 그래, 정직하냐고.
이야고) 장군님, 제가 알기로는.
오셀로)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이야고) 생각이요, 장군님?
- p. 106. 3막 3장.
. 햄릿이 운명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면, 오셀로는 반대로 집요한 악의를 가진 이가 주변 모든 사람의 운명을 파멸로 몰아넣는 과정을 그린다. 무어 인(흑인)이라는 태생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거나 꺾이지 않고 그 허들을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성품으로 넘어 온 오셀로. 하지만 이야고는 그저 악의에 가득 찬 말만으로 올곧았던 오셀로를 뿌리부터 흔들어댄다. 이야기의 시작점에서 장인과 원로원, 베네치아의 수뇌부를 상대로 한 치의 두려움도 흔들림도 없이 자신있게 자신이 데스데모나에게 사랑받고 데스데모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던 오셀로였지만, 이야기의 후반으로 가면 그런 확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 이러한 비극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이야고의 악의만큼이나 깊었던 오셀로의 열등감이다. 모두의 앞에서 자신있고 당당하게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선언했던 오셀로였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런 오셀로 역시도 자신의 피부색과 나이 차이, 외모에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들춰낸다. 결국 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카시오가 나타나게 되자 이야고가 이를 넌지시 일깨워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믿지 못한 게 아니다. 그녀에게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열등감 앞에서 자신이 카시오보다 훨씬 지위가 높고 많은 업적을 쌓았고 능력이 출중하며 이 모든 것 이전에 데스데모나가 그를 사랑하여 아버지와 고향을 버리면서까지 오셀로를 선택했다는 결정적인 증명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 그런 오셀로의 모습에서는, 묘하게도, 특정한 능력치(status)가 부족하면 다른 좋은 점이 아무리 많더라도 사랑을 위한 조건에 미달된다며, 마치 사랑이 게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상태창! 상태창!!!! 을 외치는 요즘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쐐기를 박기 위해 손수건이라는 장치가 등장하긴 하지만, 손수건 한 장으로 무너지는 확신이라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니까.
. 그래서인지 요즘 트렌드에 맞춰 이 작품을 재해석해 변주할 때는 오셀로의 열등감에 초점을 맞춰, 아예 '이야고라는 실체가 없었다'라는 설정이 종종 등장한다. 데스데모나가 살해당한 참극의 현장에서 오셀로는 이 모든 비극의 책임을 떠넘길 이야고라는 존재를 찾지만 그런 인물은 없으며, 그 모든 일은 오셀로 자신이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야고는 소름돋을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꼭 실체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구나 자신 속에 이야고가 있고, 자신을 파국으로 빠뜨린 건 자신이었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지.
이야고)
이 손수건을 카시오의 숙소에 떨구고
그가 발견토록 해야지. 질투하는 사람에겐
공기처럼 가볍고 하찮은 물건도
성경 말씀처럼 강력한 확증이야.
이게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무어인은 벌써 내가 준 독약 먹고 변했어.
위험한 상상은 그 본질이 독약인데
맛이 고약한 줄 처음엔 거의 모르다가
약간씩 핏속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유황불처럼 타는 거야. 그렇다고 했잖아.
- p. 118. 3막 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