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트 에코의 마지막 싸움의 기록

제0호 - 움베르트 에코 (열린책들)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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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테러가 정말로 일어나야만 제0호를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도 폭탄을 던진 적이 없다 해도,
우리는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제0호를 만들 수 있어요.



. 움베르트 에코의 이번 작품은 전작인 '푸코의 추'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이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것도 그렇고 (하긴 에코의 주인공들 대부분은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이들이긴 하다), 특히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고립된 집안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게 되었는지를 회상하는 첫 챕터는 푸코의 추의 반복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뿐만 아니라 언론의 속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책에서 예시로 드는 카이사르 암살 누명이나, 우문우답놀이 같은 예시 역시 에코의 책을 읽어 온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은 내용이고. 그동안의 책에서 수많은 책의 내용을 인용해가며 책마다 하나의 도서관을 세우던 에코는, 이번 제0호에서는 자신의 책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채운다. 어쩌면, 이번 소설이 그가 내는 마지막 소설임을 예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그렇게 에코는 소설 속에서 황색 언론의 고문으로 활동하게 된 주인공을 통해 언론과 권력의 유착을 직접적으로 고발함과 동시에 무솔리니의 죽음과 관련해 그의 장기인 음모론을 풀어놓는다. 오히려 너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쏟아내다보니 오히려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그 덕에 권력과 자본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언론사가 신문의 예비판 - '제0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후원자의 입맛에 맞게 사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여기에 독자의 입맛에 맞게 사실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각색하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주면서 언론을 가열차게 비판한다. 여기에 다른 한편에서는 음모론을 통해 메인 줄거리가 함께 진행되는데, 약간 의외인 건 이런 구조라면 보통은 어딘가에서 두 이야기가 만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별다른 접점이 없이 진행되는 게 너무 단순하다. 그런 장치를 만들어 낼 여유조차 없었던 절박한 상황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회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컸던 것일까.


. 그래서 뒤로 가면 갈수록 푸코의 추와 판박이인데 너무 심심한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되지만, 끝까지 관성(?)과 의리(??)로 페이지를 넘겨준 독자를 위해 에코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푸코의 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결말을 준비해두고 있다. 푸코의 추로부터 멈추지 않고 글을 써온 25년. 폭로와 그에 응징으로 끝난 극적이지만 단선적이었던 결말에서, 그동안의 성찰이 담긴 결말을. 처음부터 이런 결말을 생각해두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서두를 맞춰놓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결말을.


. 이렇게 에코의 마지막 소설은 끝이 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 작품인 '장미의 이름' 이상의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이 마지막이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단순히 '한 시절'이라고 말하기엔 책장의 두 칸을 차지할 정도로 꽤 오랜 기간을 몰두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 준 작가였기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처음부터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움베르트 에코의 작품과 함께 해 준 열린책들 출판사에게도.




"그런 프로그램은 다른 모든 폭로를 전혀 쓸모없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왜냐하면 어느 프랑스 책의 제목대로 현실은 허구를 뛰어넘으니까. 그 정도가 더 심해지면, 무언가를 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내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말이지?"

"두말하면 잔소리.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더라? 그래, 진리란 그런거야. 사람들이 무언가를 폭로하면 다 거짓말처럼 보이게 하지. 결국 BBC는 '그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한 셈이야. 내일부터 당신이 아무리 황당한 소리를 하며 돌아다녀도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을걸."

- p.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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