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 콜린 맥컬로(교유서가) ●●●●●◐○○○○
로마라는 제국은 한 사람이 죽는다 해서,
아니 여러 사람이 죽는다 해도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로마인은 한시적으로 태양의 자리를 차지할지언정
결코 자기 자신을 태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전작 '시월의 말'을 필리피 회전에서 마무리한 후 콜린 맥컬로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펜을 한 차례 놓았었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쓰러지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맞붙으려는 시점에서 시리즈를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독자들은 클레오파트라와 악티움 해전을 원했고, 그래서 노작가가 다시 펜을 들어서 나온 게 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다. 토지 4부를 마치고 펜을 놓았다가 정주영 회장의 권유로 5부를 집필했다는 박경리 선생의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 그렇게 나온 마지막 부를 읽으면서 느낀 건, 작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필리피 회전에서 펜을 놓을 수밖에 없었겠다는 것이다. 마리우스와 술라가 나오는 1부(이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에서부터 콜린 맥컬로의 관점은 개인과 체제의 대결에 맞춰져 있었다. 로마라는 체제와, 역사의 흐름에 맞춰 차례차례 등장하는 일인자들이 과연 어떤 구도를 형성하느냐 하는 것. 최초의 일인자였던 가이우스 마리우스처럼 체제와 어느 정도 타협해가면서 로마를 개선해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폼페이우스처럼 체제에 눌려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술라나 카이사르처럼 기존의 체제를 완전히 부숴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카이사르 암살은 '일인자'라는 개인에 대한 체제의 마지막 저항이었지만, 그마저도 2차 삼두정에 의해 키케로가 쓰러지고 필리피에서 체제를 지지하던 마지막 이들이 패배하면서 사실상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길디 긴 일대기는 비범한 개인 - '로마의 일인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제와서 내전의 승자가 옥타비아누스이든, 안토니우스이든 그것은 바뀌지 않는다. 로마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길에 접어든 것이다.
"카이사르(옥타비아누스)는 수수께끼야."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가 프로쿨레이우스에게 말했다.
"어째서 말인가, 티투스?"
"정복자처럼 굴질 않네."
"그가 자신을 정복자로 생각하는 것 같진 않네. 그는 그저 자신이 로마 원로원과 인민에게 건네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조각들을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끼워맞추고 있는 거야."
"하!" 타우루스가 투덜거렸다. "로마 원로원과 인민이라니, 웃기지 말게! 그는 고삐를 놓을 생각이 없네. 아니, 내가 도통 모르겠는 건 말일세, 그가 어떻게 다스릴 생각이냐는 걸세. 그가 다스린다는 건 분명하거든."
- 3권, p. 239. 안토니우스를 격파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로 귀환하는 길에
. 메인 스토리가 끝난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온갖 가십들이다. 클레오파트라의 폭주와 안토니우스의 자멸, 진짜 카이사르의 후광을 가지고 있는 카이사리온에 대한 위기감 같은 흥미롭긴 하지만 역사의 흐름에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이야기들이 책을 메우고 있다. 무력화된 원로원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닌 안토니우스파, 옥타비아누스 지지자들 같은 지칭으로 뭉뚱그려지고(스카우루스와 드루수스가 그립다), 이야기의 무대는 옥타비아누스와 그의 밀실, 아니면 안토니우스가 술에 무너졌다 일어졌다를 반복하며 클레오파트라와 아웅다웅하고 있는 궁정과 천막이다. 더 이상 멋들어지게 서간을 써내려가는 사람도 없고(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가 그립다!!) 로터리 클럽의 민중도 없으며(루키우스 데쿠미우스라도 백살먹은 노인으로 남아있었더라면ㅠㅠ) 그저 권력자들과 그들을 둘러싼 몇몇 최측근들을 번갈아가면서 비춰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심지어 독자들이 그렇게 원했던 악티움마저도 피로 피를 씻는 치열한 혈투라기보다는 정략에 의해 사전에 허무하게 결판이 난다. 첫 시리즈로부터 30년, 이제는 늙고 시력을 잃은 작가에게 애초에 자신이 구상하지도 않았던 1천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너무 가혹한 짐이었던 게 아니었을지.
p.s. 보통 시리즈물을 리뷰할 때는 1부부터 이야기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이렇듯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는 처음의 힘을 잃고 끝난 게 너무나 아쉬웠기에, 리뷰 역시도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4부부터 7부까지를 차례로 훑어가고, 그런 연후에 걸작인 3, 2, 1부를 거꾸로 훑어가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뜬금없이 3부 리뷰를 보시게 된다면,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참고로 (언젠가 각각의 리뷰를 쓸 때 이야기하겠지만), 술라의 시대를 다루는 3부 '포르투나의 선택'에는 8점, 마리우스의 시대를 다루는 1부 '로마의 일인자'에는 9.5점, 그리고 마리우스와 술라의 대립을 그려낸 2부 '풀잎관'에는 평점 10점을 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