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이야 - 와카타케 나나미(북폴리오) ●●●●●●●●◐○
"요즘 세상에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은 간단하다,
마음의 독기를 쐬게 하면 된다고요."
다만 그런 직장과 우리 직장의 결정적인 차이는 우리에게 아무런 방법론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훈련도 받지 않고, 동료 관계도 없고, 치유해 준다고 인정받지도 못한다. 이래서는 일에 긍지를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다. 우물 속에 동그마니 홀로 남겨진 개구리처럼 깊은 고독의 밑바닥에 있을 것을 강요당하고, 가끔씩 우물 속으로 날아드는 돌멩이와 쓰레기를 그저 눈을 뻔히 뜨고 보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는 것. 그것이 우리 일이다.
- p. 97. 당나귀 구덩이
. 와카타케 나나미는 지금껏 내가 읽은 작가들 중에 가장 독을 잘 쓰는 작가다. 그게 소소한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사회와 일상에 녹아든 악의를 포착할 줄 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질투, 배려 없는 독선, 일방적인 이용과 배신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책에는 우리가 너무나 흔하게 노출될 수 있고 방비할 수 없는 악의가 페이지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래서 와카타케 나나미의 책을 읽고 있자면, 내가 누리고 있는 평온이 얼마나 불안한 토대 아래 쌓아올려진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고, 오늘 하루도 참 운좋게 살아남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프리타'(프리 아르바이트) 여탐정인 하무라 아키라와 겉보기에는 멍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뛰어난 경찰인 고바야시 경위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다가 마지막에는 두 주인공이 조우하는 단편으로 끝을 맺는다. 사실 소개만 봐도 단번에 하무라 아키라 쪽의 이야기가 재미있을 거라는 감이 오고, 실제로도 그렇다. :) 마땅한 직업 없이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출장 청소를 하거나 잡지의 빈 기사란을 땜빵하고, 심지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연 들어주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악의와 음모에 휘말리는. 그러면서도 그녀만의 씁쓸함과 태연함과 강인함이 뒤섞인 태도로 그 수렁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저벅저벅 걸어나오는 이 독특한 캐릭터는, 이 책에만 등장하는 고바야시 경위와는 달리 후속작에다 까메오로까지 등장하면서 와카타케 나나미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가 된다.
"요즘 세상에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은 간단하다, 마음의 독기를 쐬게 하면 된다고요. 새로운 방식의 저주다, 게다가 자기가 저주하는 게 아니라 생판 남이 대신 저주해 준다고요. 술에 취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사람...." 미즈키가 잠깐 말을 끊었다. "아버지에게 전화 서비스 일을 소개해 준 사람이었어요."
- p. 91. 당나귀 구덩이
. 특히 '당나귀 구덩이' 같은 단편은 하무라 아키라였기에 성립할 수 있었던 느낌이다. 사회의 온갖 어두운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아르바이트에 하무라 아키라가 뛰어든다. 매일매일 전화기 건너편의 누군가는 불륜을 고백하고, 직장 상사에게 괴롭힘 당한다는 하소연을 하고, 때로는 사채업자가 빚진 사람을 괴롭히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직원은 그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아무런 상담도 해줘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야한다. 당연히 전화내용은 개인정보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직원들 간에도 비밀이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개구리처럼 깊은 고독의 밑바닥에 있을 것을 강요당하고, 가끔씩 우물 속으로 날아드는 돌멩이와 쓰레기를 그저 눈을 뻔히 뜨고 보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는' 회사에서 사람이 하나둘씩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무라 아키라가 그 이면의 이야기를 찾아나가는데, 사실 추리 단편이 맞나 싶기도 하지만 그게 전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걸작이었다. 장르로 치면 극과 극에 해당하는 코지와 하드보일드가 같은 단편 속에 있는데, 와카타케 나나미는 이 둘을 결합시키는 독보적인 '눈'과 그 속에서 활약할 수 있는 최적의 주인공인 하무라 아키라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코지 하드보일드'라는 과연 이게 가능한가 싶은 장르도 그녀의 작품이라면 가능하다.
. 이와 함께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가 그려내는 하무라 아키라의 이야기는 다른 작가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지닌다. 그렇게 다양한 독(이 작품은 물론 이 이후의 '의뢰인은 죽었다'를 읽으면,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악의가 존재하고 있었는지 기가 찰 정도다)을 다루면서도, 그 독에 중독되지 않고 씁쓸한 위트를 섞어 결연하게 버틴다는 것이다. 그래서 끈질기고 터프하게 버티는 것 외엔 별다른 능력이 없어보이는 하무라 아키라지만, 그녀는 내가 본 여성 캐릭터 중에서는 누구보다도 강한 - 최근 시대 분위기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자가복제되는 마블의 여성 히어로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 슈퍼 히어로다.
이 조용한 주택가의 대체 어디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구경꾼이 나타나 신기한 듯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책임을 무슨 페인트처럼 여기저기 찍어바르고 있었다. 미카메 미호 탓, 어두운 주차장 탓, 경찰 탓, 그리고 내 탓. 세상에는 자기 실패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인종이 있다. 나는 그들이 싫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담배를 꺼내 어깨의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불을 붙였다.
그러나 그들은 때로 대단히 위험하다.
- p. 174. 네 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