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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Oct 24. 2021

내 마음이 가벼워진 그 순간들에 대하여

part 3. 가스라이팅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기

   나는 아직 가스라이팅 상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온전히 치유되었다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시 직장 생활도 하고, 이렇게 예전의 일들에 대해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회복되었다. 기억들을 되살려 내 마음이 가벼워졌던 그 순간에 대해 나눠보려고 한다.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나로 되돌아왔을까?


1. 하고 싶었던 꿈을 생각하며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시달릴 만큼 시달렸으니 당분간 좀 쉬어보면 어떠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나는 서서히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너무도 큰 행복이었다. 더 이상 가스라이터(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사람)가 밖에 돌아다녀도 추궁하지 않는 시간들이 너무도 감사했다. 별 목적 없이 핸드폰을 집에 두고 산책을 하고 오는 중에도 가끔은 이런 게 북에서 탈출한 탈북민의 심정일까 싶을 때도 있었다.  

 

 내가 일상으로 복귀를 하면서 회복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가스라이터로부터 도망치고 친구의 부탁으로 정신의학과를 가게 되었다. 병원을 찾아간다는 게 어렵게 느껴졌지만 친구의 가족이기도 했고, 애정 어린 부탁이라 가보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은 내가 가스라이터로 제대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어서 무직도 아닌 학생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는데, 그것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사회로 나가야 하는 과제를 받게 되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가스라이터는 정말로 내가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나도 오래 강요받다 보니 늘 자신이 없고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나는 가스라이터와 지내는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딱 한번 입사지원서를 냈다. 가스라이터는 그 회사를 인터넷에 검색한 후 직원들이 일하거나 워크숍 사진을 찾아냈다. 그리곤 이런 남자들과 어울리려고 가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너 거기서 연락도 안 왔지?"


가스라이터는 회사로부터 1차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것을 모르고 나를 조롱했다. 나는 어차피 면접을 보러 갈 수가 없으니 그에게 통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불시에 사진을 찍어서 내가 어디 있는지 보내야 했기 때문에 말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얼마나 많은 언어적, 물리적 폭행이 있을지도 두려웠다.


수업 중임을 알렸지만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요구하는 가스라이터의 실제 대화


 회사는 그때 나의 특이한 이력을 궁금해했고,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뽑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다. 아직도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기억을 하고 있다. 의기소침해있던 나에게 면접 기회는 너무 소중했으니 면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가스라이터에게 벗어난 지금이라면 당연히 가스라이터를 경찰에 신고하고 면접을 보러 갔을 것이다.


여하튼 나는 그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그 후 가스라이터와 완전히 관계를 정리한 내가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주변의 도움과 나의 노력 끝에 약 1년 뒤에 나는 서른이 넘어서 다시 입사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가스라이터가 가장 가고 싶다던 회사로!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사회에 다시 온전히 복귀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동안 내려가기만 했던 자존감도 다시 올라가고,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가스라이터에게는 타격감이 하나도 없는 복수였지만, 아무리 나를 못하게 막아도 내가 결국 해냈다는 통쾌함마저 있었다.


 그러니 내가 꿈꿔온 삶과 행복을 찾아 더 이상 가스라이터의 남은 흔적에 휩싸이지 말고 어서 일상으로 복귀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겐 일상으로의 복귀가 생각보다 큰 힘이었다.




2.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 웹툰, 에세이, 논문 등


어느 날 나는 데이트 폭력에 관한 인스타툰(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짧은 웹툰 형태)를 보게 되었다. 작가는 데이트 폭력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 현재의 나와 굉장히 심리 상태가 유사했다.



어? 이 사람도 나랑 다르지 않네?


그 순간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작가와 연대할 수 있었다.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논문도 찾아보았다. 수많은 연구들이 있었다.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도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었다. 이때 두 번째로 깊은 공감을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내 고립감에 밧줄 하나가 내려온 순간였다.


출처 이아리님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i_iary/




3. 불안을 내려줄 수 있는 취미를 계속해서 찾아나갔다.


 책이나 전문가의 조언에선 아마 찾기 어려운 조언 일지 모른다. 나는 누군가 시켜서가 아닌 살기 위한 방책으로 삶 속에서 내 불안을 내려줄 수 있는 일들을 끊임없이 찾아갔다.


(1)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듣기

 가장 먼저 나는 법륜스님의 강의들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불면증으로 잠들기 어려웠을 때, 나는 밤새 스님의 강의를 듣는 다 생각하고 들었다. 그렇게 거의 3년을 매일 강의를 들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추천을 하는 이유는 스님의 경우 종교로서의 불교는 배제하고 있다.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해결책을 답하지 않고, 질문한 그 즉시 적용할 수 있는 답을 주신다. 그래서 이름도 즉문즉설이다.


 어떤 경우는 저것도 고민이 될 수 있나? 싶을 정도의 사소한 일도 나눠주신다. 물론 그 당사자에게는 절대 사소한 고민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점에서 내가 위안을 많이 받았다. 나에게 이렇게 큰 짐이 세상 누군가에게는 그걸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해줄 만한 일이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출처 :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행복TV


(2) 여행처럼 환경을 바꾸어보기

 매일 같이 내가 가스라이터가 남기고 간 고통에 대해 아파하며 하루를 보낸 날이 많았을 때였다. 급한 대로 비교적 가까운 주변 나라로 여행을 가게 되었고, 여행을 떠난 날 저녁에 자기 전 샤워를 하면서


'와! 세상에 오늘 한 번도 내가 그 생각을 안 했구나!'


하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 온통 새로운 볼거리와 먹거리로 외부 자극에 집중을 하게 되니 심신이 쉬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쌓아둔 불안의 에너지를 해소하고 돌아오면 다소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최근에는 여행이 어려우니 국내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전시나 영상을 보거나,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친한 사람들과 함께 먹으면서 해소하고 있다.



(3) 나에게 긍정적인 말은 그냥 믿어보기

 아는 지인을 통해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분은 말을 직설적으로 해주는 분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가더라도 나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 가스라이터는 그럼 어떻게 되는지 단호하게 확신 있게 말해주지 못한다.


설령 그것이 내가 원하는 답이거나 혹은 아닐지라도 확신 있는 말을 해주니 속이 시원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가스라이터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이라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를 만나는, 혹은 만날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찾아가서 말해주고도 싶었지만 알 방법도 없었고 두려웠다.

그분은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네가 결단을 내려야 해 라고 일러주었다. 아마 상담을 다니던, 의사를 만나던 네가 결심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거야."


무엇을 결심한다는 걸까? 모호하지만 무엇인가 내가 결단을 내리면 해결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나에 대한 좋은 말씀도 해주셨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뭔지 알 수 없는 후련함과 자유로움을 느꼈고, 내가 살았던 그 방식과 조금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다. 마음을 먹어도 쉽진 않아서 온전히 실천을 하는데 1년여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제는 온라인에서도 나를 나타내는 활동을 한다. SNS도 하고 이렇게 글도 올리듯이 말이다. 그리고 비교적 오프라인 활동도 자유롭게 한다.


가스라이터는 나에게 비판적인 말만 한다. 그만큼 나에게 긍정적인 말이나 나에게 도움 되는 말은 무조건적으로 수용해보는 것도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4. 주변에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들과 함께 했다.

 

 많은 노력 중에 제일은 주변 사람들과 그 일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원하지 않더라도 몸은 현재에 살고 있지만, 기억과 생각은 과거로 갑자기 시간여행을 가버린다.


 : "근데 있잖아, 예전에 그 가스라이터가 원래 자긴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다 나 때문에 나를 만나서 이렇게 행동하는 거라고 했었거든? "


친구 : "어휴.. 그건 잘못된 말이야. 너 때문이 아니야. 그 사람이 예전부터 했던 행동을 봐."


 : "맞아, 나도 알지만... 뭔가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면 항상 그 사람이 나에게 했듯이 역시 책임감 없고 이기적이고 너밖에 모른다고 하는 것만 같아."


친구 : "아니야, 넌 지금도 너 같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넌 대단한 거야"



 이런 대화는 점차 빈도가 줄어들었다. 가스라이터가 주입한 생각이 아닌 온전히 내 생각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인들은 내가 자주 답답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매번 공감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매번 잘 들어주고 잘못 형성된 인지구조를 바로잡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인내심이 많은 지인들을 찾기 어렵다면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면 된다.



5. 병원과 좋은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나는 잘못된 상담을 통해 가스라이팅에 더 고착화되었고, 하마터면 빠져나오지도 못할 뻔했다. 키포인트는 상담 센터를 고를 때는 상담을 병행하는 병원을 고르거나, 병원에서 연계해 주는 상담센터를 가도 한다. 다녀본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도 좋은데 이때는 반드시 한국상담심리학회 또는 한국상담학회에서 자격증이 있는 분을 추천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담 시에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담 시간 내에서는 종교를 기반으로 일을 해석하지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 부분은 너무도 중요해서 별도로 언급을 하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하자.


https://brunch.co.kr/@jasminegarden/24



 부족하지만 나는 예전보다 삶에서 안정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나의 사례를 통해 각자의 치유의 답을 찾는데 힌트를 얻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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