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우리를 깎아 내려했다.
세상은 부드럽고 맨드랍고 매끄라운 것을 원했다.
깎고 밀고 문질러
티없이, 도드라짐없이, 모난 곳없이
그렇게 우리의 날카로움과 거침은 밀려났다.
우리는 영웅이 되었고, 신화가 되었고, 장식품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거칠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나'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도망쳤다.
산으로, 계곡으로, 깊은 골짜기로
구름에 몸을 숨기고 바람에 올라타
달리고 또 달리었다.
하지만 이천 년의 세월 동안 나는 찰나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업보(業報)였다.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업보.
* 배경 그림은 소산 박대성 화백의 작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