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우 Oct 19. 2023

부화

고등학교 생활을 되짚어보며 쓴 시

부화

헤어져 있더라도 같이 있는 것처럼
다른 길을 걷고 있더라도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지나가는 인연에 최선을 다하는 네가
나는 좋았다

인간은 얼마나 둔감한 동물인지
닥치기 전까진 평범함의 소중함을
잃기 전까지는 존재의 특별함을
절대로 모른다

알 속에 다시 태어난 듯
지쳐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법을 배웠다
일어날 힘이 없을 때까지 쓰러진 나는
어느새 걷고 있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앞에 생략된 '무조건적인'이 보일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우리는 무조건의 조건을 배우고 있었다

깨달음은 기억 속에 남겨진 채로
너에게도, 나에게도
영원히, 온전히




청춘’, 그 자체인 18살의 나이가 되어버린 나였다. 시를 읽다 보면 시적 상황에 내가 대입될 때 큰 울림을 느끼곤 했었다. 나는 나와 같은 나이의 고등학교 친구들, 고등학교를 경험해 본 많은 어른이 자신의 상황을 대입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이 시에 고등학교에서 얻은 지혜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이 내 시를 읽고 고등학교 시절을 상기하며 공감한다면 기분이 뿌듯하고도 넘칠 것 같다.


이 시의 제목인 ‘부화’의 의미는 고등학교 졸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어린 학생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며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부화도 알에서 나오며 현실 세상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졸업과 비슷한 면이 있다. 올해 졸업하는 내 친한 친구들과 내년에 졸업할 나를 생각하며 고등학교에서 깨달은 것들을 시에 담았다.


1연에서는 2년 혹은 3년밖에 만나지 않을 수 있는데도 너무 잘해주는 친구들이 문득 고마웠던 경험을 토대로 썼다. 학교생활이 힘들 때면 다 놔버리고 싶을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놓아도 주변에서 나를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2연에서는 평소 일상적인 상황들에 감사하지 않았던 것이 불러일으키는 수치스러움을 담았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러 상황을 겪으며 예전에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들이 있었다.


3연에서는 처음이었기에 새로웠던 고등학교 생활의 느낌을 ‘알 속에 다시 태어난 듯’에 비유해 표현했다. 그동안 집에서 편하게만 자라왔던 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철이 많이 들었다고 느꼈다. 많이 울기도 하며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잘 적응하여 나와 비슷한 친구들도 여럿 끼고 있었다.


4연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사랑과 우정의 정의를 썼다. 가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친구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조건 없는 끈끈함이 진정한 우정 아닐까?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는 말이 있다. 진짜 친구라면 자신의 일부를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 엄마의 사랑에도 조건이 없음을 깨달았다. 


1, 2, 3, 4연의 마지막 줄에는 2, 3개의 적은 단어를 써서 의미를 강조하였고 완전한 관계의 조건을 배우고 있다는 걸 5연에 담았다. 고등학교에서 깨닫게 된 가치, 사실들이 너무 많은데 이것들이 꼭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6연에 남겼다. 고등학교를 마치는 아쉬움과 고등학교에 대한 고마움이 시가 끝나도 잔잔히 남길 바라기에 마지막 두 행은 문장의 형태로 쓰지 않았다.


이 시를 읽으며 독자들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깨닫게 해 줬던 순간들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가 된 것이니까. 시를 쓰며 참고가 되었던 시는 최지인 시인의 ‘1995년 여름’이다. 이 시에서 언급하는 ‘어머니’에 나의 엄마를 자연스럽게 대입하였고, 여러 생각이 났다. 엄마의 삶은 단순한 모성애로는 설명할 수 없었기에, 이 시가 내 마음에 깊게 남았던 것 같다.


시를 창작하며 지금까지 고등학교에서 겪었던 많은 일에 대한 감정, 통찰들을 다시 떠올려보게 되어서 좋았다. 시에서는 적은 단어로 내 생각을 표현해야 하기에, 의미의 밀도를 높이는데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경기북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이곳에 지원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나에게 고등학교의 가르침의 뿌리는 지식보다 지혜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이전 14화 적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