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우 Aug 18. 2023

욕심이 클수록 방향에 집착한다

진로, 나아가는 방향

결핍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엄마와 결핍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엄마랑 아빠는 둘 다 한쪽 부모님이 학창 시절에 일찍 돌아가셨고, 가난과 결핍을 겪으며 지금까지 힘든 길을 걸어왔다. 공부하고, 놀러 다니고, 축구하고, 기타도 배워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볼 수 있었던 것에는 '내 새끼는 부족한 거 없이 자라게 해야지'라는 본능을 가진 두 어른 때문이었다.


아무 결핍 없이 자라고 있던 나는 이걸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1달에 170이 넘게, 때로는 200이 넘는 학원비를 보고도 1년간 나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친구 부모님이 비싼 학원비 때문에 눈치를 줬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 너무 편하게 살고 있는구나.


그 순간부터 옛날의 내 마음가짐이 수치스러워졌다.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닌데. 공부와는 별개로 깊은 생각들을 하고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느껴 다니고 있던 학원들을 다 끊어버렸다. 과거의 나에 대한 반성의 표현이었고 옛날의 엄마와 아빠가 겪었을 결핍을 공감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아직 성숙하지 않았던 나는 단순한 과정의 토대가 되는 행동의 이유, 내가 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보지 않는 작은 글에 양심고백 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되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주변만 둘러봐도 우리 엄마가 얼마나 천상급 엄마인지 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내가 뒤에서 엄마에 대한 칭찬을 하기 시작했고, 엄마가 가끔 나랑 학교에서 만날 때의 말투와 분위기 정도만 부분적으로 본 친구들도 우리 엄마에 대해 좋은 말을 해준다.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자란 내가 가지게 된 큰 정체성 중 하나는 '과학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인데, 이 전에 영재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날이 있었다. 엄마는 변기 위에 앉아 대성통곡했고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가 우는 모습을 봤다.


나는 단순히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가지 못해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그런 나와 달리 엄마와 아빠는 '중학교 꼬맹이가 매일 학교 끝나자마자 5시에 학원을 가서 10시에 집에 돌아온 뒤에도 스터디카페에서 2시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1년 동안 봤던 게 생각나서 그랬을 듯하다.




욕심이 자꾸만 커지는 이유


시간이 쉴 새 없이 흘러가고 나이를 한 살씩 먹으면서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평범한 일상을 회상하며 얼마나 좋은 일상인지 깨닫곤 했는데, 반복하다 보니 평소에도 은은하게 감사하고 감사하다 보면 행복해진다.


생각보다 많은 면에서 나에게 주어진 환경의 좋은 점들과 지금의 ‘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했는지 알게 된 나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몰랐다면 상관없겠지만, 알고 있는데 잘하지 못한다면 돈을 빌려놓고 안 갚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위대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칭찬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자존감도 높은 편이고,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엔 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 깊이 박여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잘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니까 내가 어느 곳에서 나의 꿈을 펼칠지 자꾸만 고민을 하게 된다.


가끔은 세상이 방향 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것 같아 흔들리곤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나는 이 두 가지가 점점 엇갈려가고 있다. 내가 가고 있던 방향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부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배로 커진다.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진 순간이 있나요?
‘한 분야의 최고가 돼 봐야지!’하고 다짐한 순간이 있었나요?
이전 02화 프로그래밍에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