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들이 운동 고민을 털어놓았다.
친구 A는 어느 운동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건드리고 있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요즘은 테니스를 치는데 발목, 무릎, 어깨 등 여기저기가 아프고 쑤시는 것도 고민이란다.
친구 B는 PT를 10년이나 받았는데 아직도 운동을 잘 모르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당장 PT를 안 받으면 뭐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면서, 10년 동안 거금을 쓴 것 같은데 이래도 되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여느 모임에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고민이라서 그날은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매주 브런치에 쓸 내용을 찾을 때 이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두번 세번 생각하다보니 친구들의 사연에 피트니스 시장의 본질적인 문제가 녹아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친구 A는 두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
하나는 '필요한 운동이 뭔지 모른다'(a)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나마 재미 있는 스포츠를 즐기다가 몸이 아파지는 문제'(b)다.
99%의 한국인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런닝, 근력 운동, 보디빌딩, 맨몸 운동 중에서 뭐가 제일 필요한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트레이너들조차 대부분은 곤란함을 회피하기 위해 '내가 재밌고 오래 할 수 있는게 최고의 운동'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릴 것이다.
이 문제가 어려웠다면, 그 이유는 첫째, 각각의 운동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점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 각 운동의 장단점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ㄱ)명확한 기준점을 세운 상태에서 (ㄴ)각각의 운동을 이해한다면 자신의 우선순위를 명쾌하게 정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ㄱ)'명확한 기준점'은 이렇게 만든다.
1차적으로 가치 판단을 한다. 신체와 관련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정하는 거다. 몸매를 고르는 사람도 있고, 건강을 고르는 사람도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위에서 정한 목표를 세부 요소로 쪼갠 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예를 들어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운동과 관련된 건강이 근력, 근지구력, 심폐지구력, 유연성, 신체 조성 같은 요소로 나뉜다는 것을 '알아내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요소들 중에서 어떤 게 가장 중요하고 어떤게 덜 중요한지 파악하면 된다. (공부해야 한다.)
기준점을 만든 뒤에는 (ㄴ)각각의 운동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위에서 정한 상위 목표와 중간 목표를(ex 건강 - 근력) 훈련하기 좋은 시스템을 찾기 위해 각각의 운동을 접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근력을 훈련하기 좋은 시스템은 스트렝스 트레이닝일텐데, 그 중에서도 어떤 도구와 종목이 나와 궁합이 좋을지 알아가면 된다. 다양한 도구와 종목을 찍먹이라도 해봐야 한다.
* 주의사항
1차 부분에서 눈치채셨을 수도 있는데, 가치 판단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자기 몸에 주사를 놓거나 수술을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뜯어 말리거나 비난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너가 원하면 다 괜찮다'는 식의 절대적 긍정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모든 것을 상대화하려는 건 논쟁을 피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아닐까? 똥고집 꼰대 처럼 보일지라도 내 생각은 그렇다. 특히 나중에 어떤 결과가 생길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향과 기호로만 정한 기준과 우선 순위는... 해로울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번엔 (b)'재미 있는 스포츠를 즐기다가 몸이 아파지는 문제'를 다룰 차례다.
이건 (a)'필요한 운동이 뭔지 모르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육체를 돌보는 수단으로 스포츠를 선택하는 이유는 대개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a)' '스포츠는 재미라도 있어서 꾸준히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기 때문이다.
근데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 중 대부분이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바로 통증과 부상이다. 심지어 꽤 많은 사람들이 중증 부상을 입어서 수술이나 재활을 하기도 한다. 왜 하필이면 재미와 매력을 겸비한 '스포츠'에서 이런 문제가 더 흔한 걸까?
그건 스포츠의 특성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1) 스포츠는 움직임에 변수가 많아서 부상 확률이 높다.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정적인 훈련과 비교하면 특히 그렇다.
2) 스포츠는 특정 움직임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움직임을 골고루 하지 못하게 되고, 이게 통증이나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3) 스포츠를 즐기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준까지 신체를 강화시켜둬야 한다. 기초 훈련이 먼저고 스포츠는 나중이다. (명심)
즉,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스포츠를 버틸 수 있을 만큼 강한 몸 상태'를 미리 만들어두어야 한다. 이 순서를 모르거나 스킵하고 다짜고짜 스포츠를 즐겨버리면 오히려 스포츠를 그만 둬야 할 가능성이 올라간다. 이것도 위에서 다룬 (a)의 (ㄴ) '운동의 특성을 이해하는 단계'를 거쳤다면 이미 알고 있었을 사실이다.
피트니스 시장의 본질적인 문제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제공하는 '판매자'가 드물다. 반대로 하루살이처럼 당장 눈 앞에 있는 운동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의사결정을 가이드하고 도와주는 코치가 필요하다. 튼튼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몸의 기본기를 만들어주고,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다면 오래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면 된다. 자신이 가르치는 것의 정체를 알고, 그것의 단점과 한계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이 필요한지 메타인지할 수 있는 코치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