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걸 배울 때는 스승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 꼰대처럼 들릴 수도 있다. 스승을 자처하지만 속은 텅 빈 사기꾼이나 제자를 가스라이팅해서 등쳐 먹으려는 소인배들이 워낙 많으니까.
하지만 사실이다. (스승다운 스승이라는 전제 하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지식과 경험'이라는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좋은 스승은 그 격차를 바탕으로 난이도가 높은 판단을 해낼 수 있다. '오늘은 이것까지만 가르쳐야겠다'거나 '지금 수준에는 알려주지 않는게 낫겠다'처럼.
제자가 스승의 속을 다 알수는 없기 때문에 종종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왜 빨리 알려주지 않냐며 답답해하기도 하고 진도가 빠른 것 같다며 버거워하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럴 때일수록 스승을 믿어야 한다. 제자의 깜냥으로는 스승을 '역판단'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만이 남는다면 자신의 고민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게 최선이다. 좋은 스승은 제자의 심리까지 고려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맹신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80%는 믿으시고, 20%는 비판하셔도 돼요."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맹신도 경계하자는 취지에서다.
특히 운동을 배울 때도 이런 사제관계가 꼭 필요한데, 그건 운동 학습의 몇가지 특징 때문이다.
첫째로, 수준에 따라 배워야 할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이걸 헷갈리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엉덩이 근육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스쿼트를 배우면 무릎이 다칠 수 있다.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내 몸 상태에 맞는 규칙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범위 내에서 운동을 익혀나가야 한다. 둘 다 좋은 스승이 필요한 일이다. 레벨을 파악하고 규칙을 창조하려면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니까.
둘째로, 초보자는 자신의 수준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스승이 '너는 아직 스쿼트를 연습할 단계가 아니'라고 해도 '아닌데, 나 스쿼트 해도 되는데'라며 고집을 피우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아마 혼자서 연습하다가 기어이 다치고 말 것이다. 반대로 스승이 '이제는 스쿼트를 연습해야 할 단계'라고 해도 '아직 못 할 것 같다'고 믿는 제자는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답답하게 제자리만 걷고 있을 것이다. 이런 리스크를 줄여주는 게 좋은 스승이다.
세번째 특징은 머리로 이해했다고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운동은 몸으로 경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은 소수의 학문 중 하나다. 그래서 체험 유무나 경험의 양에 따라 판단력이 달라진다. 머리로는 똑같은 이론을 외우고 있어도 짬이 많은 스승과 그렇지 않은 제자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이 글의 결론이 '트레이너 좀 믿어주세요!'라면 나도 뻔뻔한 헬스 업자에 불과할 것이다(웃음). 하지만 고객들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똑똑해서 트레이너를 믿지 못한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위 내용을 종합해보면 트레이너가 여간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좋은 스승이 되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하지만 실제 헬스장에서 저 정도의 전문가를 찾는게 쉬운 일인가? 저런 사람이 동네 헬스장마다 널려 있을 수가 있나? 오히려 졸업도 안 한 체대생, 취미로 자기 운동만 해 본 몸 좋은 청년, 책은 안 보고 미친듯이 운동만 해대는 보디빌더 지망생도 많은 게 현실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아무 트레이너나 일단 믿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다. 하지만 상황만 탓하고 있을 수도 없다. 상황이 이러니 고객분들은 아무렇게나 하셔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고객분들께 추천/비추천드리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운 좋게 좋은 트레이너를 만났을 때 그 기회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가장 멀리해야 할 태도는 '날로 먹고 싶다'다. 돈을 내고 운동을 배우는 이유는 운동 효과를 얻으려일 것이다. 어떤 분들은 '원리를 이해하고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두가지 목표 모두 다음의 전제 조건을 지켜야만 달성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내 수준에 맞게 설정된 규칙을 외우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날로 먹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규칙을 외우지도, 지키지도 못한다. 노력을 안 하는 게 날로 먹기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뇌를 꺼내서 트레이너에게 맡겨둔 것처럼 행동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노력하길 멈춘 채 트레이너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 이건 신뢰도, 맹신도 아니다. '의존'이다.
운동에서는 '돈만 내면 다 해주기'가 불가능하다. 날고 기는 트레이너도 고객의 몸을 조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억만금을 낸 고객이라도 규칙은 스스로 외워야 하고, 규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조절하고 통제해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걸 '진지함'이라고 요약하곤 한다.
이걸 거꾸로 적용하면 효율적인 학습자가 될 수 있다. 진지한 태도로 규칙을 외우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기본은 갖춰진 셈이다. 여기에 더해 [왜 나에게 이 규칙이 필요한지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머리 뿐만 아니라 몸을 사용해서 천천히 체득하려 하는 끈기]까지 갖춘다면 효과는 두배, 세배가 될 수 있다.
운동을 배우는 건 머리도 필요하지만 머리로만 되는 게 아니고, 장기간 꾸준히 이어나가야 빛을 보는 일이다. '장기간', '꾸준히'라는 단어만 봐도 질색할 수도 있지만, 그 덕분에 단순한 운동 효과 이상의, 절제력과 끈기, 불확실성을 버텨내는 능력 등 다양한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아쉬운 건 이렇게 중요한 것을 가르치는 직업의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중으로부터 충분히 신뢰받지도 못 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하는 업계 종사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차츰 개선될 거라 믿는다. 우리도 약간의 힘이라도 덧붙이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