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짐 (20240114)
2024년 독일인의 새해다짐 순위는 이렇다고 한다. *
더 많은 돈 절약, 더 많은 운동, 더 건강한 식습관 가족/친구와 더 많은 시간 보내기, 환경을 위해 더 많은 일 하기, 직장 스트레스 덜 받기, 술 덜 마시기
그리고 한국인의 새해다짐 순위는 이렇다고 한다.
취업, 이직, 운동하기, 돈 많이 벌기, 주식 및 재테크 공부, 독서, 자기 계발(영어공부하기, 자격증 따기), 여행하기, 내 집마련
공통점은 단연 운동과 다이어트. 운동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국적불문하고 모두의 영원한 소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 차이점은 뭘까.
나는 내용에 앞서서 새해 다짐 항목을 설명하는 '언어' 자체에 묘한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독일의 새해 다짐 항목에는 Mehr와 Weniger, 그러니까 '더', '덜'과 같은 부사가 유난히 많다. '더 많이 무얼 하기', '덜 무얼 하기'. 한편, 한국의 새해 다짐은 운동, 공부, 취업, 독서와 같이 하나의 단어로 된 경우가 많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각국이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고작 통계 조사 하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겠느냐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답변이지 않았을까 싶다). 무언가를 '더' 혹은 '덜'한다고 했을 때 그 기준은 현재 자신의 상태이다. 내가 가진 돈에서 이전에 사용했던 것보다 더 적게 쓰고, 내가 현재까지 운동을 하고 있던 것보다 조금 더 많이 하는 식이다. 한편 '돈 많이 벌기', '운동하기'라는 표현 속에서는 기준이 없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운동하기와 같은 목표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달성 또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항목 내용의 큰 차이점은 '소망의 방향'이다. 절약이나 가족/친구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것은 모두 '이미 있는 것에서 조절하는' 방향이다. 내가 가진 돈에서 소비를 조절하거나, 내가 가진 시간을 잘 안배하여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쓰는 것이다. 현재 가진 것을 '조절 및 관리'하는 방향이다. 한국 새해다짐의 방향은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이다. 공부, 자격증, 재테크 주식으로 돈 벌기, 여행하기 등 모두 '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뭔가가 없으니 그 무언가를 생산하여 채워 넣으려고 하는 것. '생산 및 축적'의 관점이다. 그리고 100에서 70이 되는 것보다 0에서 1이 되는 것은 매우매우 어렵다. 이 중, 경제적인 관점만 본다면, 한국에서는 절약이 아니라 돈을 더 버는 것을 원한다는 건 참 특이하다.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해 '절약'은 전 세계적으로, 심지어 굴지의 미국에서도 2024년 새해 다짐 1순위가 절약이 된 만큼 범국가적 현상인데 한국인은 더 많은 부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데에 더 집중하고 있다. 한국이 인플레이션을 때려 맞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간만에 베이커리 카페에 갔더니 병아리 눈물만큼 딸기가 박힌 조막만 한 생크림 크로와상이 7800원 인 것을 보고 안 쪼는 척하느라 고생했다... 물론 절대 고르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왜 우리는 계속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걸까. 자기 계발을 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야근을 하고, 독서 모임을 하고, 부동산 공부를 하고, 주식 공부를 하면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주입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 관성 때문은 아닐까. 생산과 성장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었던 생산적 삶 이후의 시대를 모두가 처음 살기 때문에 아무도 방향을 모르기 때문이지는 않을까. 과거의 영광 고성장의 여운이 너무 강해 저성장시대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장하지 않아도 잘 사는것이라는 새로운 인식패러다임이 이젠 필요한건 아닐까.
별안간 덜 생산적인, 그래도 문제없는, 오히려 괜찮은 한 해가 되기를!
(* Statista; https://gutentagkorea.com/archives/9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