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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ug 21. 2018

소피아의 아들

엘리나 프시코, 2017,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의 제목은 <소피아의 아들>이다. 어째서 주인공의 이름인 <미샤> 혹은 <미하일>이 아니라 굳이 소피아의 아들로 정의된 것일까?

  

미샤/미하일은 자주 꿈을 꾼다. 어머니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꿈속에서 아이는 곰으로 변하고, 어머니가 가르쳐 준 어머니의 방(실은 계부인 니코스의 비밀의 방)의 잠긴 문을 계속해서 당긴다. 다른 방에는 각각 상징적인 동물들이 놓여있다. 감독은 얼룩말, 소, 악어, 늑대 등의 동물이 각각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방, 니코스의 방에는 무엇이 숨어 있었을까. 끝내 열리지 않는 문고리를 돌리면서 곰인 미샤/미하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훗날 미샤/미하일은 그 방이 어머니의 방이 아니었다는 것, 어머니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니코스와 동침하고 있었다는 것, 그 방은 니코스가 자신의 ‘유산’을 감춰둔 비밀의 방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머니는 미샤/미하일에게 자신이 니코스와 결혼했다고 고백한다. 그때부터 미샤/미하일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집착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결혼을 받아들이지 못해 집을 나간다. 그리고 그리스어를 쓰는 니코스에게 대항해 같은 러시아어를 쓰는 빅토르에게 잠시 몸을 의탁한다. 미샤/미하일의 이 작은 저항은 빅토르가 미샤/미하일에게 몸을 팔자고 제의했을 때 끝이 난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매장면마다 미샤/미하일은 어머니를, 니코스를 죽일 듯이 응시한다. 

니코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었을 때 미샤의(이제는 미하일이라고 부를 필요 없는) 잔인함은 절정에 달한다. 미샤는 니코스를 죽이려는 사소한 시도들을 몇 번 반복한다. 어머니에게 니코스를 사랑하는지 묻고, 니코스와 어머니가 추던 춤을 따라 추고, 어머니에게 ‘어머니답게 보이도록 머리를 내리라’고 이야기한다. 미샤는 이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완전히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미샤는 마침내는 니코스를 죽이고자 결론을 내리고, 빅토르를 집으로 초대해 니코스가 게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빅토르는 게이 노인들에게 몸을 팔며 돈을 버는 사람이다. 미샤는 ‘니코스를 행복하게 죽게 해주기 위해서 형을 불렀다’고 설명한다. 니코스가 죽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죽게 해줄 것이라고. 빅토르는 미샤의 말에 속아 하마터면 니코스를 강간할 뻔한다. 그러나 모든 비극이 일어나기에 전에 어머니가 먼저 집에 도착하고 만다. 미샤는 총을 들고 니코스를 겨누고 있었다. 그녀는 상황을 눈치 채기도 전에 몸을 날리고, 미샤는 총을 쏘고, 총은 당연히 그녀를 맞춘다. 그리고 파티는 끝이 난다. 빅토르와 친구들은 달아난다. 소피아는 미샤를 방에 가두고 화장실로 숨어들어 초콜릿을 먹는다. 극단으로 치닫던 미샤의 행동은 결국 소피아가 나서고서야 끝이 난 것이다. 밤 내내 미샤는 문을 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소피아는 노래를 부르며 머리를 푼다. 마치 미샤의 부탁을 들은 것처럼, 이제 정말 미샤의 여자가 된 것처럼. 그러나 아버지를 죽인다고 어머니를 차지할 수는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피아는 머리를 길게 푼 채 미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미샤는 작별을 이야기하는 노래와 함께 다시 곰의 꿈을 꾼다. 잭이 된 미샤는 콩나물 줄기를 따라 위로,위로 올라가고 있다. 마지막 씬에서 미샤의 몸에는 풍선이 매달리고 미샤는 스크린 위로 사라진다. 총을 발사함과 동시에 미샤는 이제 소피아의 아들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미샤는 이제는 미샤이다. 소피아는 작별의 노래와 사과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그러나 마침내 자라나고 만 미샤는 소피아의 아들로 더는 남지 못할 것이다. 

  

동심을 상징하기도 하는 여러 동물들의 은유에도 불구하고 미샤는 결코 그 나이 아이답지 않다. 미샤는 잔인하다. 미샤는 연약하다. 미샤는 교활하다. 미샤는 순수하다. 영화는 다양한 미샤의 모습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도 보여준다. 미샤는 소피아가 자주 보는 드라마 속의 주인공 아들 이름이기도 하며, 미하일(미샤의 그리스 이름)은 올림픽 성화에 불을 붙이는 아이의 이름이다. 그런가하면 미샤/미하일 본인은 계부인 니코스를 따라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다. 니코스는 어린이용 쇼 프로그램으로 TV에 나온 나름대로 유명인이다. 소피아는 작별 노래를 부르는 여자 가수와 이름이 같다. 영화는 이렇게 프레임 속의 프레임, 장면 속의 장면으로 주인공들을 산산이 분산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서 관객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장면들에서도 미샤와 미하일, 니코스와 소피아를 비춰볼 수 있게 된다. 미샤의 삶은 결국 영화 속의 영화를 통해서도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잭의 줄기를 따라 사라진 미샤, 풍선을 타고 올라간 미샤에게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소피아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니코스는? 영화는 마지막까지 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며 관객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은 이제 더는 니코스의 가정(家庭)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총이 발사 되면서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미샤는 아이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갔다. 이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끝이 나고, 미샤에게는 오로지 미샤만이 남는다. 바야흐로 제목이 <미샤>로 바뀌는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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