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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29. 2024

새늪

듣기로, 그 늪의 이름이 새늪인 까닭은 죽은 새들이 자주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참새나 까치 같은 흔한 새가 아니라 뉴스 자료 화면에서 볼 것 같은 물새들이었다. 늪 근처에는 물이 없었으므로 어디에서 새들이 날아오는지는 주민들도 알지 못했다. 늪은 겨울에는 땅바닥이 보일 정도로 얼었다. 새들은 그때, 늪의 바닥에서부터 나타났다. 죽은 새의 부리나 구부러진 발가락을 보고 사람들은 바닥에 새들이 죽어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얼지 않은 동안 늪은 깊고 침울했다. 마을에 가끔 들리는 관광객이나 마을 주민들은 늪에 쓰레기를 버렸다. 늪이 다시 얼기 전까지는 바닥의 새와 마찬가지로 쓰레기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에 여름 내내 늪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늪에서는 항상 썩은 냄새가 났다. 쓰레기와 죽은 새들의 냄새였다.
네 할머니는 여름에 죽었다. 이웃집 여자가 방에서 고꾸라져 죽은 할머니를 발견했다. 너는 서울에서 장례를 치르러 내려가야 했다. 네 할머니는 죽기 전에 이미 물건을 모두 정리해둔 다음이었다. 방도 깨끗했다. 할머니는 네게 거는 전화에서도 자주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오년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정말로 죽을 줄 몰랐으므로 너는 슬프기보다 우선은 놀랐다. 매일 죽는다는 타령을 들었는데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유서에는 지정해둔 물건을 새늪에 던지라고 적혀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네게 예전에는 새늪의 바닥이 저승으로 이어져 있다는 소문이 돌았노라고 알려주었다.
“애들이 종종 빠져 죽었는데 한 번도 시체가 떠오른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바닥이 저승과 연결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 죽은 사람들을 위해 물건을 저 늪에 던져 넣으면 저승에서 주인을 찾아 간다고 믿었어.”
그러나 그것은 아주 오래된 미신으로, 여태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네 할머니조차 평소에는 새늪에 쓰레기를 버리고는 했으므로 유서에 왜 그런 구절을 적었는지는 도통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너는 유언에 따라 유품을 정리했다. 유서에는 던질 물건과 불태울 물건이 정확히 나누어져 있었다. 빗, 화장품, 세면도구와 목걸이는 불태울 물건이었고 거울, 달력, 동네 계 수첩은 던질 물건이었다. 목록에 따라 늪에 던질 물건을 모으자 작은 상자 하나 정도가 나왔다. 너는 물건을 정말 던져야 할지 망설이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네 할머니를 만나 본 적이 없었지만, 그토록 확고하게 물건을 나눈 사람이라면 어떤 연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너는 상자를 늪에 던지기로 했다. 한참 여름이었다. 늪이 깊을 무렵이었다. 나는 네게서 상자가 어떻게 가라앉았는지 상세하게 들었다. 처음에는 배처럼 늪 위에 잠시 떠 있다가, 곧 무거운 귀퉁이부터 차례로 가라앉았다고. 새들의 시체나 쓰레기들처럼 네 할머니의 상자도 이제 여름 내내 늪 바닥에서 썩어갈 것이었다.
상자를 던진 다음 날 너는 서울로 올라왔다. 일이 바빴으므로 한동안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네가 다시 전화를 한 것은 겨울이 다 되어서였다. 너는 불현듯이 할머니의 상자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고 했다. 사무실의 달력 때문이었다. 2014년 새해를 맞아 새 달력이 지급되었다. 숫자가 큰 달력이었다. 네 할머니는 2000년부터 달력을 꾸준히 모았다. 숫자가 커다랗고 매달마다 전국의 산 사진이 붙은 달력이었다. 그 새 달력을 보았을 때, 너는 할머니가 달력 뒷면에 일기를 쓰고는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왜 상자에 달력을 넣기 전에 뒷면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일었다. 일이 바빴으므로 너는 내게 대신 상자를 찾아보러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이에 늪은 얼어붙었다. 네가 할머니를 돌보던 마을 여자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자, 상자는 이미 떠올라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네 할머니가 적은 일기가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여자가 전화 끝에 했다는 말에도 흥미가 생겼다.
“아, 그리고 올해는 새들도 아주 많이 떠올랐어요. 예년보다 훨씬 더 많아요. 늪은 지금 온통 새들의 뒤집어진 발로 덮여있답니다.”


새늪은 길의 끝에 있었다. 마을 여자가 동행해주었다. 네 대리로 상자를 찾으러 왔다고 하자 여자는 아주 기뻐했다. 우리는 가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할머니가 고집이 셌다는, 이 길을 걸어서 늪까지 가는 걸 좋아하셨으며 차로 태워다 드린다고 하여도 항상 거절하셨는데 늪도 늪이지만 이 길 자체를 좋아하셔서 그러셨다는 이야기였다. 여자는 너보다 더 네 할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항상 일기에 새늪과 이 길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어요.”
길에는 따로 이름이 없었다. 주민들은 늪으로 가는 길이나 주황지붕 집 옆길 따위의, 정해지지 않은 모호한 지명으로 길을 불렀다. 여자는 네 할머니만이 항상 같은 이름으로 길을 불렀다고 했다.
“늪길이라고 부르셨어요. 새늪으로 가는 길이니까 늪길이래요. 할머니는 늪에서 나오는 새들이 이 길의 나무들에 사는 새들이라고 생각하셨어요. 물새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해도 통 듣지를 않으셨죠.”
그 길은 새늪과 닮아 있었다. 구부정하고 음침했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비포장도로로 변했다. 주변의 나무라고 해봐야 오래된 소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다. 여름이었으면 흙먼지가 심했을 테지만 다행히 겨울이었다. 땅은 꽝꽝 얼어 있었다. 네 할머니가 길을 늪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길이라기보다는 새늪의 탯줄 같았다. 늪에 가까울수록 길은 질척거렸고 끝에 가서는 점차 넓어지더니 길 자체가 늪으로 변하였다. 그러니까, 어쩌면 정말로 길이 늪에서 나왔거나, 늪이 길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늪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얼어서 말라붙은 늪은 깊이가 고작 복숭아뼈 정도였다. 그리고 여자의 말처럼 새들, 많은 새들이 뒤집어진 채 죽어 있었다. 새들의 삐죽한 삼각형 모양 발들이 늪을 뒤덮고 있었다. 늪이 얕았으므로 처음에는 길 위에 갑자기 죽은 새들이 나타난 줄 알았다. 여자가 여기가 새늪이에요, 하고 알려준 다음에서야 길이 끝났음을 알았다. 어디까지가 길이고 어디서부터가 늪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러니 새들도 할머니의 추론처럼 정말로 길에서 늪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런 생각에 몰두하느라 나는 여자가 작대기를 들고 와 어깨를 두드린 다음에야 늪 가운데에 나타난 할머니의 상자를 발견했다. 새들의 뒤집어진 발과 주민들이 버린 플라스틱 봉투, 찢어진 바지, 빈 소주병 사이에 상자가 있었다. 여자는 익숙한 동작으로 작대기를 휘저어 상자를 가까이 오게 만들었다. 상자는 더러웠다. 내용물도 무사하지 못할 성 싶었다. 나쁜 냄새가 나는 진흙을 털고 상자를 열었다. 과연 이미 네 할머니의 물건은 늪의 오물에 젖어 있었다. 여자가 안타까운 표정을 했다.
“일기가 남지 않았겠는데요.”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흐물흐물해진 상자를 잘라내고 안에 든 것들을 꺼냈다. 깨진 거울, 찢어진 달력, 글씨가 번진 동네 계 수첩 등이 나왔다. 달력은 찢어졌을 뿐 아니라 면이 달라붙어 펼치기조차 힘들었다. 억지로 몇 장을 떼자 글자와 날짜가 서로 겹쳤다. 1월-늪에서 새가 또 나왔다. 죽은-30일-가 아니었다. 길은 끊겼으며-수요일-고리 같았다. 추론할 수 있는 문장은 없었다. 여자도 내용을 해석하지 못했다. 예상하던 바였다. 여름내 늪 아래 가라앉았던 상자이니만큼 멀쩡하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래도 이 일기나마 네게 전달해주기로 했다. 그 일기는 지금 물휴지로 닦아 비닐봉투 안에 넣어두었다. 가능한 진흙을 닦아냈는데도 일기에서는 여전히 늪의 냄새가 난다. 너도 펴보는 순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일은 여자와 내가 남은 물건을 다시 늪에 던져 넣을 때 일어났다. 여자가 작대기로 늪을 휘저어 물건이 쉽게 가라앉도록 하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물이 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작대기 아래에서 무엇인가 솟구쳐 올랐다. 여자와 나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그것은 단순히 늪 위로 떠오르는 게 아니라 공중으로 솟아 길바닥 위로 올라왔다. 여자가 먼저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세상에, 물새에요!”
살아있는 새였다. 죽은 새들의 발을 밟고 날아오른 이 새는 길 위에서 몇 번 허우적거리면서 진흙을 떨어뜨리더니 이내 날기 시작했다. 새는 정확하게 길을 따라 날아갔다. 구부정하고 음침한, 깊고 침울한 날갯짓이었다.
여자는 그 새가 네 할머니였을 거라고 했다. 네 할머니는 항상 이 길과 늪의 공통점에 대해 , 길에서 시작한 것들이 늪으로 흘러가고 늪에서 고인 것들이 길로 흘러나간다고, 모순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이다. 더구나 늪은 저승으로 이어진 곳이니 우리가 네 할머니의 물건을 꺼내자 새가 되어 당신이 직접 찾으러 오셨으리라는 게 여자의 추측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여자에게 어느 정도 동의했다. 새가 여름 내내 늪 바닥에서 살아남았으리라고는 생각 할 수 없었고, 또 여자가 전해준 할머니의 말, 길과 늪이 서로 고이고 흘려보낸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네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안다. 어쩌면 그 새가 할머니 같았다는 내 이야기에 분개해할지도 모른다. 너도 나만큼이나 미신을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여기에 와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새가 탄생한 늪과 새들이 흘러간 길을 네게도 보여주고 싶다. 그러면 너도 이해할 것이다. 띄엄띄엄 이어진 일기의 마지막 구절처럼, 그 길과 늪은 마치 고리 같았다. 순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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