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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29. 2024

고독(蠱毒)

0.

저는 고작 자살할 삶이라면 일찍 죽지 못하는 게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유서를 쓰게 되었어요. 이것은 도무지 자연사하지 않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1.

남편은 한 해 전 이미 죽었습니다. 자살은 아니었어요. 그럴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운전면허를 갓 딴 아들이 모는 차에 탔다가 일어난 일이었어요. 남편과 아들을 친, 시멘트를 가득 싣고 있던 트럭 운전사는 거울에 남편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고 얘기했어요. 그의 거울에는 아직도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남편과 그는 얼마나 가까웠던 걸까요?

장례식장에서는 저보다 딸이 더 많이 울었습니다. 저는 늘 아들보다 딸이 먼저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딸은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사고 때문에 우울증이 생긴 건 아니에요. 딸에게는 쌓인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나 남편이나, 혹은 동생이었던 아들이 눈치 채지 못한 것들이 딸을 짓눌렀어요. 그 애는 젠가처럼 무너졌습니다. 젠가는 재밌는 게임입니다.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다들 즐길 수 있지요. 결말은 항상 똑같습니다.

탑이 무너집니다. 

딸을 무너뜨린 마지막 블록은 그 애가 키우던 햄스터의 죽음이었습니다. 저는 딸이 언제부터 햄스터를 키우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느 날 집에 오니 작은 채집통 안에 담긴 햄스터가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딸은 놀란 저에게 저렇게 가끔씩 볕을 쬐어주면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어디서 데려왔는지, 왜 비밀로 했는지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때 저는 알았어야 했습니다. 아끼는 것의 죽음은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햄스터는 결국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결말이 있는 젠가 게임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삶이 무너집니다.

딸이 햄스터에게 붙인 이름은 눈송이였습니다. 눈송이는 7월에 죽었습니다. 여름 때문에 녹아버린 것 같았어요.



2.

딸은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자살했습니다. 눈송이가 죽은 지 1년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래 버텼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주치의에게 딸의 죽음을 알리러 찾아갔을 때, 그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따님은 그래도 어머님이 계셔서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했어요.” 이상하게 저는 그때 그 문구가 떠올랐어요.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딸은 자주 연락이 끊기고는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딸의 부재에 각자의 방법으로 익숙했습니다. 남편은 매일 딸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아들은 딸에게 카카오톡을 보내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재미는 있는지 캐물었어요. 저는 무엇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므로 남편과 아들이 죽자 딸에게 어디에 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눈송이가 죽고, 아빠가 죽고, 동생이 죽고, 누구도 행방을 묻지 않자, 돌연 돌아갈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의 전화는 딸에게 일종의 나침반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등대의 불빛이거나요. 

그러니까 저는 딸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는 데에 실패한 거예요. 그럼에도 저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한 것은 제가 딸의 삶을 이어주는 사람에서라는 의미가 아니었을 겁니다. 

고독(蠱毒)에 대해 아시나요. 딸과 저는 한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두 마리의 자살 희망자였습니다.



3.

고독(蠱毒)을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지네나 전갈 같은 독충을 여럿 잡아 한 항아리 안에 넣습니다. 그 안에서 그것들이 서로를 잡아먹도록 하며 주술을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항아리 안에는 단 한 마리의 벌레만 남게 됩니다. 다른 모든 독충을 잡아먹고 살아남은, 그것이 고독입니다. 



4.

제 우울의 뿌리가 어디인지 저는 여태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울하다는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남편을 만나기도 전부터 저는 일종의 자해 습관이 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죽고 싶은 날이 오면 포크로 허벅지를 난자했습니다. 피가 송골송골 맺힐 때까지 살을 찌르고 있으면 마치 헬륨 풍선에 테이프를 붙여 안전하게 바람을 빼듯, 우울이 안전하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자해를 한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몇 번 포크로 허벅지를 찔렀고, 멍이 시퍼렇게 들었고, 피가 올라왔지만, 남편은 모른 척 했어요. 저는 맺힌 피를 휴지로 닦아 변기통에 넣어 물을 내리면서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 고민하고는 했습니다. 남편도 분명히 제 허벅지의 흔적을 보았을 텐데 그는 한 번도 흉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술에 취해도, 달이 크게 뜬다고 했던 밤에도,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도 묻지 않았어요. 

저는 그의 침묵이 좋았습니다. 그 침묵이야말로 제가 가진 흉터가 ‘비밀’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비밀에는 밝혀서는 안 된다는 서약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남편은 자신도 모른 채 이 서약에 서명을 해 준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에게도 밀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비밀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저는 상관없었습니다.

그때에는 항아리 안의 독충이라고는 저 하나 뿐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무엇도 잡아먹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어요. 매일 텅 빈 배를 주리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의 결혼은 꽤 괜찮았어요. 저는 어쩌면 항아리 밖으로 나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5.

한 번은 어린 딸을 데리고 서해에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만조의 시간에 바다에 갔어요. 썰물을 기다리며 딸에게 만조와 간조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딸은 허벅지가 잠길 정도로 깊은 물이 시간이 지나면 썰물이 되어 빠져나간다는 이야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더욱 신기해하더군요. 그쯤 딸의 관심사는 우주였습니다. 

딸은 화성의 시간이 지구의 시간과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백과사전을 읽고 나면 유리 가가린이 맨 처음 지구를 보았을 때 한 말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를 일기장에 적어두었습니다. 그 페이지만 반복해서 보았기 때문에 종이가 울고 찢어져 백과사전 속의 유리 가가린은 슬퍼보였어요. 

딸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라이카 이야기였습니다. 딸은 라이카에 대한 거라면 무엇이든 수집했습니다. 그 중에는 라이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거짓 동화도 있었습니다. 그 동화책에서 라이카는 행복하게 영원히 지구의 궤도를 돌고, 가끔 화성에 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에게 전화를 하며, 둥둥 뜬 채로 코코아를 마십니다. 실제 라이카는 끔찍하게 질식사했습니다. 

저는 딸이 이 동화책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해피엔딩이니까요. 그러나 어느 날 마지막 페이지에 보라색으로 X가 그려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어린이 글씨체로 이렇게 덧붙여 적혀 있었습니다. 

“스피릿과 오퍼튜너티는 영원히 솔의 시간*을 살고 라이카는 죽어버린다.”

저는 간조를 기다리며 딸의 문장을 생각했어요. 처음으로 그 애가 침수되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분에 대해서도요.

딸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백과사전과 동화책을 모두 뺏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마침내 간조의 시간이 왔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만조의 바다에 너를 던져놓고 갈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바위 위에 올라가 구조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바다는 너를 먹어버렸을 텐데. 



6.

남편은 해외여행을 좋아했습니다. 출장도 자주 갔고, 저와 단 둘이서 가는 경우도 많았어요. 여행 자체 보다 여행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가장 좋게 기억하고 있는 여행지는 캐나다 토론토였어요. 그곳에서 문신을 목까지 한 아이리쉬 선원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는 남편에게 파도가 크게 치는 날 배에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이야기 해줬다고 해요. 발이 물렁물렁한 상태로 오래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그러다가 육지에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허망한 외로움도 모두 토로했다고요.

둘은 우연히 호텔 흡연 구역에서 만나게 됐대요. 같이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서로 직업을 묻고 가족들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딸과 저는 집에 남아있었어요. 저는 아들을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오후 1시였어요.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눈만 감은 채 자려고 애쓰는데 아이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어요. 딸이 저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책 읽어줄게.”

딸은 종종 태교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는 했습니다. 제가 잠 든 사이에도 읽어주고 있다는 건 몰랐어요. 딸은 동생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을 만나면 곧 남동생이 생긴다고 곧잘 자랑하고는 했어요. 남편은 딸을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1년 터울의 동생이 생기는데 질투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에도 대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남편이 치룰 대가는 조금 혹독했지요.


딸이 책의 첫 줄을 읽었습니다. 


흰돌은 이름처럼 하얀 개였다.


아,

저는 속으로 탄식했습니다. 이것은 그 이야기, 라이카와 스피릿과 오퍼튜너티의 이야기였어요. 딸은 저의 아들에게 죽음에 대해 속삭이는 중이었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자신이 고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책을 골라서 읽어주고 있었어요.

죽음은 늘 저의 도처에 놓여 있었고 단 한 번도 이런 삶을 후회해 본 적이 없으나 그때 처음으로 딸의 운명이 가여웠습니다.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항아리 속에 이제 제가 먹어야 하는 것이 들어온 것이었어요.



7.

어쨌든 제가 이 유서를 적는 것은 살아남을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소개이며 사용 설명서이기도 합니다. 

저는 무용한 사용 설명서를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컨대 로봇 청소기를 사면 청소기가 망가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설명서를 읽지 않았어요. 제품이 망가진 다음에 읽는 설명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작은 장점들이 발견되고는 했어요. 저는 텔레비전의 AI 기능도, 에어컨의 숙면 기능도, 카메라의 P모드도 모두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망가진 물건 앞에서 사용 설명서를 읽을 때면 늘 알 수 없는 충만함이 들었습니다. 이제 영원히 사용할 수 없는 부가 기능들을 서술해 놓은 문장이 편안했어요. 

저의 유서도 그렇지 않은가요? 저는 더는 세상에 없을 예정입니다만 이 유서를 읽는다면 제가, 그리고 제 딸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무용한 일이지요. 손 쓸 수 없는 일들이 지나간 다음에는 백짓장 같은 공허가 남습니다. 그 공허함에서 오는 침묵과 평화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망가진 다음 구구절절 쓰인 저의 설명서를 읽어주세요. 



8.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딸은 동생을 아주 잘 돌보았어요. 둘은 우애가 좋은 남매로 자랐습니다. 남편은 아들이 자라는 것만 봐도 기운이 난다고 했어요. 남편의 지갑 속에는 딸과 아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끼워져 있었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시멘트 트럭이 남편의 차를 우그러뜨리고, 그 안에 있던 남편과 아들이 차체에 깔려 납작해지기 전까지, 삶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지요. 

저를 제외하고서 말이에요.

저는 그때도 여전히 제 삶이 자살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차가 우그러질 때는 주방에서 고사리를 손질하고 있었어요. 손으로 고사리의 껍질을 하나하나 까면서 이토록 무해한 삶이라면 무해한 죽음으로의 치환 또한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큰 착각이었습니다.

남편이 납작해집니다.

저의 삶이 저물어갑니다.



9.

딸이 자살한 후 방에서 일기장을 찾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유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딸은 생전 느꼈던 것들을 모두 일기에 적은 모양이었어요. 딸의 일기장에서 특히 자주 보인 문장은 ‘엄마보다 빨리’였습니다. 


‘엄마보다 빨리 결혼해야 해.

엄마보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해.

엄마보다 빨리 죽어버려야 해.

엄마보다 빨리 눈송이가 죽고 말았어.’


딸은 서른 전에는 무조건 죽고 싶다고 써놓았습니다. 스물아홉을 넘기지 못한 까닭도 이 강박 때문인 것 같았어요.


저는 우울한 자들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등한 동료 시민으로서 서로의 눈만 보아도 우울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읽히지 않기를 바랐으나 딸은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저도 딸을 알아보았지요. 

일기장에는 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저는 주로 냉소적인, 반응하지 않는, 무덤덤한, 이상한, 우울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딸의 일기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언젠가 엄마가 나를 죽일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저항하지 않는다. 우리는 같은 항아리 속에 있는 두 마리의 독충이다. 나는 고독하다. 고독이 우리를 잇고 있다.’



10.

딸을 잡아먹을 때 저는 최대한 천천히 과정이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한 번에 삼켰어요. 딸은 키가 아담한 편이라 쉬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딸은 자신의 아빠와 동생, 그리고 눈송이를 잃은 후여서, 전혀 저항하지 않았어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뱀처럼 저는 딸을 먹었습니다. 목구멍에서 꼴깍 소리가 날 때, 배가 부를 때, 저의 가죽이 팽팽히 당겨질 때, 마침내 허기가 사라지고 저 하나만이 남은 항아리의 뚜껑이 열릴 때, 저는 보다 선명하게 딸과 함께 갔던 바다를 기억합니다. 만조의 바다와 라이카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저의 목 끝까지 물이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숨 쉬기가 어려워집니다. 고독은 끝났을 텐데 저는 왜 아직도 항아리 안에 있나요?



11.

사실, 전부 부질없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저는 전혀 고독하지 않습니다. 딸이 오랜 시간 함께 해줬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제 뱃속에, 제 빗장뼈 뒤에, 남편과 아들과 딸이 모두 존재하니까요. 저는 하나이자 전부이며 고독이자 저주입니다.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며 지나온 적 없는 사람이고 한 번도 배불러 본 적이 없습니다. 

저를 사용하시려거든 먼저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주세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손을 넣어봐 주세요. 제가 당신의 손을 잡겠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테지만 두려워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살아감은 고독의 연속이니까요.



12.

남편과 아들은 12월에 죽었습니다.

눈송이는 7월에 죽었습니다.

딸은 8월에 죽었습니다.

저는 9월에, 9월에 죽겠습니다. 




*솔은 화성의 하루를 지칭하는 말. 24시간 39분으로 지구에서의 하루보다 39분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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