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감문 25.7.15
저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 최악에
최악의 상황까지도 생각을 해두는 편입니다.
이걸 쓰면서도 혹시 100일 잔치를 못하는 거 아닐까??? 100일이 지나면 슬슬 고비가 찾아온다는데 100일 잔치 이후에 내가 또 실망하고 좌절하는 일이 생기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이 시시때때로 올라옵니다. 이 소감문도 그냥 막 쓸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기쁘고 좋은 날에 나는 왜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걸까?
나는 왜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온전히 믿어주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들을 여러 번 겪으며 생긴 방어기제인
것 같아요.
또 충격받고 상처받고 무너지고 싶지 않으니까
기대치를 낮출 대로 낮추고 항상 경계하고 의심해요.
재발할 수도 있다 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수없이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제 마음을 아끼게 돼요.
온 마음을 다 하지는 말자.
너무 최선을 다하지 말자.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지.
내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마음을 쓰자.
네 저도 지금 정상이 아닙니다.
저희 부부는 한 5년 전쯤에 이혼을 결심하고 법원에 이혼서류를 내고 1년 정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별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이혼사유는 돈 때문이었어요. 저와 상의도 없이 4 금융권 대출과 일수까지 받으며 저를 여러 번 속이고 가정 일에 소홀했습니다.
몰래 대출받은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어요.
현관문에 온갖 연체딱지들이 붙고 아파트 월세와
관리비는 세네 달씩 밀리고 생활이 말이 아니었어요. 돈이 없어서 애들 유치원비가 밀리고 집에 돈 받으러 사람이 찾아오는 상황까지 왔을 때에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남편을 붙잡고 울며불며 우리 진짜 정신 차리고 제대로 잘 해나가 보자.
우리 애들 잘 키우려면 돈도 모으고 나도 신경 쓰고 잘할 테니까 앞으로 우리 진짜 잘 살아보자는 제 말에 귀찮다는 듯 짜증스럽게 건성으로 대답하고
며칠 뒤 일수를 또 세 건이나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때 제가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 이 사람은 침몰하는 배구나.
온 가족을 다 망치겠구나.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애들을 살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결혼 9년 차에 이혼을 결심했어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큰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어요
근데 그때는 돈문제가 도박 때문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번에 25년 1월 1일에 자기 입으로 도박을 했다고 나 모르게 대출을 받아서 큰돈을 순식간에 다 날렸다고 고백했을 때 제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무너졌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혼하려고 한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아이들을 잘 키워보자고 다시 만나 재결합을 하고 나서는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고 예의를 지키고 관계회복을 위해 진짜 많은 노력을 했었거든요.
정말 제 인생을 걸고 관계회복에 온 진심을 최선을 다했어요.
다시는 예전처럼 살지 말자야지! 남보다 못한 사이로 서로 불신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살지 말아야지!!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이랑 여행을 다녔고 등산을 가고 저녁마다 칭찬타임을 하면서 아이들 마음에 난 상처를 보듬기 위해 애를 썼어요.
아이들 부모로서도 그렇지만 남자, 여자로도 잘 지내기 위해서 둘만의 데이트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다시 다정하고 친밀해지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였어요.
재결합을 하고 남편과 지낸 3~4년 동안
아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행복했어요.
남편을 다시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존경했어요.
특별한 일 없고 가족모두 건강하고
너무나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도박에 손을 댔다는 것을 믿고 싶지가 않았어요.
인생이 심심해서 그런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당시 정말 견딜 수 없이 괴로웠던 것은
빚도 빚이지만 남편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이었어요.
다시는 안 그럴 거고 정말 앞으로의 삶은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제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절하게 말하는
남편에게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어쩌면 내가 너를 망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내가 딱 끊어내지 못하고 자꾸 병신같이 용서해 주고 또 용서해 주니까 니가 나를 우습게 보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거 같아. 나는 너를 망치고 너는 나를 망치고 있어."
존경과 신뢰가 무너진 관계는 너무 위험합니다
호칭부터 너, 니가 되고 반말이 나가고
표현이 거칠어지더라고요.
<우리행운사랑해>였던 제 핸드폰 속
남편의 번호는 도박고백 이후 삭제되어
지금은 그냥 010 뭐뭐뭐 숫자로 되어있어요
남편이 너무 한심하고 원망스럽고 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든 엄청난 충격과 배신감에
더 이상은 아무 노력 하기가 싫고 열심히
살기가 싫어지더라고요.
일이 터지고 우울과 불안에 허우적대며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이번에 도박 고백을 듣고 나서야 우리가 몇 년 전
이혼하려고 했을 때의 상황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때도 도박빚이었구나...
그럼 이게 벌써 두 번째다.
내가 알게 된 게 두 번째인 거지 내가 모르는 숨겨진 것들도 많지 않을까???
작정하고 내 등에 칼을 꽂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남편이라니...
내가 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옆에 두고
같이 사는 내내 불안에 떨어야 하지?
세 번째 네 번째 배신을 내가 또 어떻게 감당해?
저런 걸 가장이라고 믿고 살 수가 있나??
한동안 최악의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어요.
오늘 100일 잔치이지만
남편이 저에게 말한 건 1월이니 별일 없이 지낸 지
7개월 차에 접어들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처참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게 눈에
보여요.
단도박 상담도 먼저 찾아보고 알아보고 본인이
신청했고 경제적으로도 책임감을 가지고 밤낮으로 열심히 돈을 벌고 있어서 안쓰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아이들에게도 다정하고 잘 챙겨주고
진짜 이런 남자 없거든요.
연애시절 보다도 신혼시절보다도 지금이 훨씬 가족들을 잘 챙기고 철도 들고 가장다운 모습이에요.
도박문제만 아니라면 정말 제 맘에 쏙 드는 놓치기 아까운 남자예요.
그런데 수시로 올라오는 불안 때문에 의심하고
경계하는 마음과
지금 너무 열심히 잘하고 있으니 남편을 다시
마음껏 사랑하고 의지하고 믿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가지면서 사는 삶이
너무 괴롭고 힘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런 게 다 너무 지치고 피곤합니다...
제가 뭘 어쩐다고 되는 게 아니겠지요.
그러니 남편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챙기고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능력 있고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사람인지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고 귀하고 소중한 사람인지를 좀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심심하고 아무 일 없고 맹숭맹숭하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같이 별일 없는 게
그게 행복하고 평온한 삶이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괜히 더 재미있는 거 뭐 없나
자극적인 거 뭐 없나~~ 하다가
가장 중요한 것을 영영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남편을 좋아합니다.
남편을 좋아하는 만큼
제 자신도 너무 소중하고 좋아해요.
저는 제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상처받지 않고 불안하지도 않고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애들 배우고 싶은 거 맘껏 배우게 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춘 부모로 살고 싶어요.
도박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제가 곁에 있으나 없으나 남편의 선택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잘 안되지만 늘 주문처럼 외웁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결말이 해피엔딩이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당신의 단도박 백일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앞으로 단도박 백일, 1년, 2년을 세고
기념하는 것이 중요하지도 않고 큰 의미도 없는
그냥 평범하고 잔잔하고 조금은 심심하고 밍밍한 인생을 삽시다.
애들 대학 가는 것도 취직하는 것도
연애하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같이 보고
손주들도 같이 보고 함께 백년해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