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열두 번째 : 40일간의 캐나다 일기(3)
이 글은 몬트리올 맥길대 도서관에 들어와서 소파 간이 책상에 앉아 쓰는 글이다. 조모임을 하는 학생들을 관찰하며 부러워하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로 여행을 왔다. 영어로만 소통하는 퀘백과 달리 여기는 불어가 먼저다. 도심은 온통 불어로 대화하는데 조모임에서 들리는 언어로 역시(?) 영어다. 한쪽 화이트보드에 그래프를 그려가며 토의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질투가 난다. 나도 다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풋풋했던 청춘의 싱그러움을 느끼고 싶다.
지금 와서 느끼는 자괴감 중 하나지만, 대학 때 공부한 내용이 머릿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학사 전공은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해당 분야에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곤 들었다. 관심만 있고, 지식이 없으니 대학 때 무엇을 했는지 돌아본다. 대학이 이미 취업을 위한 관문이 된 건 오랜 일이지만, 다시 취업의 문턱에 서야 하는 나에게 진로 탐색은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지나간 세월을 돌이키고 싶다.
남들은 내가 서울대를 나왔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쳐도 잘할 것이고, 다시 취직도 잘할 것이라 생각을 쉽게 하는 것 같다. 나에겐 이 ‘서울대’란 타이틀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내가 정녕 그에 걸맞은 사람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자존감 브레이커다. (서울대란 타이틀이 진짜 부끄러운 꼰대들도 물론 매우 많다.)
연예부 기자를 하면서 가장 자괴감이 들었던 말도 “그 대학 나와서 왜 이거 하니?”였다. “부모님이 피눈물 흘리시겠다”라는 말까지도 들었다. 아무리 기자가 박봉에 힘들고, 요즘은 소위 개나 소나 기자를 한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서울대를 나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판사, 검사, 의사, 대기업 사원 등 명성이 높거나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면 실패자 되는 것인지 화가 나고 슬펐다. 물론 이 학력이 조금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회사를 가는 것에 유리할 수도 있다. (이제 이력서에 학력 칸도 없어지는 시대 아닌가!) 그러나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싫었다. 그 시선이 싫어서 퇴사를 결심한 것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난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스스로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나는 휴대폰에 ‘자신의 선택을 믿어라’, ‘자신의 선택을 최고로 만들어라’ 따위의 글귀를 상태 메시지에 적어 놨다. 모두 나를 보는 시선들에게서 벗어나고, 그 시선을 보란 듯이 반전시키기 위해 했던 다짐들이었다. 사실 이마저도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한 결과 아닌가!
3번의 퇴사를 하고 나서 어떤 (가깝지 않은)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그 선배는 ‘거기 간다고 할 때부터 깜짝 놀랐는데 회사 잘 골라가라’라고 말했다. 무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온 메시지다. 게다가 두 번째 퇴사 소식 이후 처음 온 연락이다. 또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니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이런 사람들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같은 의문을 하고 시선을 보낼 거란 것을 알게 됐다.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이 글도 누가 보고 ‘꼴값 떤다’고 할까 봐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 선택에 대해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보다 내가 이 선택을 진정으로 믿느냐가 더 중요하게 생각이 드는 시점이다.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예전엔 “왜 그 대학 나와 이거 하니?”란 답변에 충격을 먹고 구구절절 설명하던 나는 이제 없다. 이젠 “왜?”라는 질문에 “하고 싶어서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