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평화로웠던 때. 유럽 벨기에로 한 학기(6개월) 간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용기 있었던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강렬한 기억을 남긴 시절이다.
그 순간들을 글로 남겨 보고자 한다. 그때가 그리워질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도록. 사진은 벨기에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셨던 맥주와 웰컴 스낵이다. 비행기에서 야경을 보며 마시는 맥주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나의 경우 저때가 최초의 장시간 비행이었는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책 없이 마음껏 저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벨기에에 도착하면 어떻게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지, 내가 살기로 한 집에는 잘 도착할 수 있을지, 휴대폰 로밍은 잘될지 같은 걱정은 잠시 미뤄놓고, 자유롭게.
벨기에의 하늘은 참 예뻤다. 서울에서도 늘상 보던 예쁜 하늘이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감성에 젖어 갑자기 하늘이 예뻐 보이는 때가 있다. 브뤼셀 공항 주변에 하룻밤을 묵을 숙소를 잡아서, 비행기 자국(?)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새파란 하늘에 하얀 비행기의 자취와 어스름한 분홍색 빛이 어우러져서 메리 포핀스 하늘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벨기에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지내기로 한 집에 도착했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학교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집을 구하기 위해 페이스북에서 정보를 뒤지다가, 이 집을 발견했다! 나에게 방을 내어 준 친구는 내가 교환학생으로 간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데, 한 학기 동안 캐나다 퀘벡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어서 집을 내놓은 거였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우리 둘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만약 이 집을 구하지 못했다면 집을 구하느라 골머리를 앓았을 게 뻔하니, 이 집을 구한 게 나의 첫 번째 행운인 셈이다.
집에는 총 4명의 여학생들이 살았다. 한 명은 벨기에에 있는 다른 학교를 다녔고, 다른 두 명은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로라'는 4명 중 가장 처음으로 만난 친구다. 내가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집 앞에서 낑낑거리고 있을 때, 함께 캐리어를 끌고 3층까지 올라가 준 친구다. 로라를 처음 봤을 때, 아이 메이크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눈 위에 민트색으로 라인을 긋는 메이크업이었는데, 검은색 라인만 고수해 온 나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민트색 아이라인을 도전해 보고 싶다.
사진은 친구들과 함께 먹은 케이크다. 크림과 견과류로 된 케이크였는데, 참 달달하고 맛있었다. 무튼 모든 것이 낯선 타지에서 나를 환영해 주는 사람을 만나니, 안정감이 들고 벨기에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려버린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가족에게 잘 도착했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잠에서 깨어서 어슬렁거리다가 방문 밑에 있던 초콜릿과 메모를 발견했다. 함께 사는 친구 '엘리샤'가 주고 간 것이다. 너무 스윗했다... 타지인을 위해 함께 식료품점에 가 주겠다고 먼저 말하고, 자기가 가능한 시간까지 말해 주는 스윗걸이라니. 엘리샤는 사랑이 많고, 배울 점도 정말 많은 친구였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용기와 배려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나를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괜히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갑자기 연락해서 놀라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을 모두 이겨내고 손을 내미는 거란 말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 친해지는 관계도 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관계가 더 많은 것 같다. 가끔씩 오는 안부 연락, 먼저 밥 한 끼 하자고 손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요즘 들어 참 고마운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엘리샤처럼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벨기에에서 받았던 환대로, 다른 사람을 환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