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릿속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도 좋았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p.11)
# 누군가가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덜 외로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그럴 수 없었던, 그러지 않았던 내 비겁함을 동시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31)
# 내가 그 글을 쓰면서 남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의식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담았을 때 감상적이라고,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 봐 두려워서 나는 안전한 글쓰기를 택했다. 더 용감해질 수 없었다. (p.31)
#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 일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p.32)
#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느라 자기 목소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내게 넌지시 말했다. (p.35)
_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p.52)
#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글쓰기에 매달렸다. 문장과 문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를, 모든 단락이 제 역할을 다하기를,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온전하게 전달될 수 있기를 당신은 바랐다. (p.58)
#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이 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p.59)
# 써야 하니까 쓰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어서 쓰는 마음, 마음을 다해서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불처럼 당신 몸을 휘감고 아프게 하는 느낌을 받았다. (p.65)
# 덩어리 같은 막연한 생각을 언어로 풀어낼 때, 어렴풋하게 떠오른 문장들을 당신의 목소리로 종이 위에 적어나갈 때, 당신은 더 이상 사람들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골똘히 한 생각을 써 내려간 글 속에서 당신은 당신 나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p.75)
# 그토록 나약해 보이는 당신 안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고 흔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글로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보이는 당신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라도 증명하고 싶었다. (p.75)
#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p.75)
#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p.75)
#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p.79)
_몫
# 기록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같은 날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거든. (p.127)
#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나를 수습할 수 없을 때 나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노트에 적은 후에 바로 찢어서 없애버렸어. 글은 글일 분이라고, 예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어떤 글을 남기기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바람을 담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마음은 실제로 전해지지. 상대가 그 글을 읽든, 읽지 않든 말이야. (p.172)
_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