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우렁각시

by 햇살정아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거실 한 귀퉁이에 선풍기 뼈대가 쪼르르르~~~ 줄지어 서있다.

밤새 우렁각시가 왔다 갔나?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낮에는 뜨거운 햇살이 집안 가득을 메우지만 더 이상 선풍기는 필요하지 않다.

갈길 잃은 아이들처럼 방마다 한 대씩 방치대어 있었다.

먼지는 참 부지런하다. 쉴 새 없이 선풍기 날개에 뽀얗게 내려앉는 걸 보면...


처음부터 이렇게 방치할 생각은 아니었다.

여름이 꺾이자마자 제 할 일을 다한 선풍기를 보는 것이 나도 불편하였다.

'빨리 정리해서 넣어야지...' 하는 마음은 먼지가 쌓여가는 속도만큼 빨리 희미해졌다. 내 눈에도 뿌옇게 먼지가 쌓여가는지, 선풍기를 봐도 안보였다. 나의 새벽과 밤을 지켜주는 장승처럼 우두커니 한 자리 차지하는 선풍기가 익숙해져 가는 요즘이었다.


사실 매년 선풍기 청소 당번은 남편이었다.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쉴 새 없이 일하는 남편에게 선풍기 정리까지 부탁하기엔 양심에 찔렸다.

'이번엔 내가 정리해볼까?' 했던 마음이 마음뿐이었나? 당장 급한 일이 아니라고 '내일, 내일' 미루다 보니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결국, 나의 승리다.

남편이 보다 못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밤늦게 저렇게 다 닦아놓고 잤을까? 아마 남편은 선풍기를 볼 때마다 큰 숙제처럼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성질 급한 사람이 진다고, 이번만큼은 느긋한 내가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가지런히 놓인 선풍기 뼈대를 보면서 쾌재를 불렀다.

"야호! 청소 끝~~~~"

내가 닦아놓은 것 마냥.... 숙제 하나가 마무리된 듯, 아주 개운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감사했다.


나머지 부속물들은 어디에 있을까?

보물찾기 하듯 집안을 둘러보았다. 세탁실에 나란히 포개져 있는 선풍기 날개와 뚜껑(?)을 보면서 남편다운 정리정돈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내가 이 맛에 살지!"

엄마의 생뚱맞은 웃음소리에 눈 비비고 일어나는 아이도 덩달아 함박웃음을 짓는다.


여보~

오늘 밤에도 부탁해~! 조립해서 창고까지!!

앗! 선풍기 커버도 잘 씌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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