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봉와직염에 걸렸다. 크리스마스이브 선물처럼 산타는 '당근과 신호'를 보냈다. 남편은 일 년 내내 밤잠을 설쳐가며 죽도록 일을 한 결과 사내에서 고가점수 1등으로 승진하였다. 대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통증에 둔감한 남편에게 이젠 몸 좀 신경 쓰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늘 도돌이표다.
나 : 건강 챙겨, 잠좀자, 아프면 병원 가, 비타민이라도 챙겨 먹어.
남편 : 누구는 병원 가기 싫어서 안 가? 누구는 자고 싶지 않아? 나도 쉬고 싶어, 가장의 무게가 무거워, 나도 일하기 싫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누구보다도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의 몸이 혹사당하는 것도 모른 채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만 안쓰러울 뿐!
성격 탓이다. 하나를 해도 꼼꼼히, 그냥 넘어가는 일 없이 자로 잰 듯 반듯한 사람. 대충이라곤 1도 없는 사람이다. 매사에 모든 일들을 꼭꼭 눌러살다 보니 탈이 나는 건 어쩜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지도 모르겠다.
사실 며칠 전부터 남편은 컨디션이 안 좋았고, 그저 감기 몸살 정도로 치부했다. 병원 갈 시간도 없다는 그에게 나는 허구한 날 잔소리를 하였다. 몸에 이상 증후가 나타나서야 발등에 불 떨어진 듯 급하게 병원을 찾고 보니 '봉와직염'이란다. 이건 군대나 농사꾼같이 외부활동이 잦은 사람에게 잘 생기는 증상이라고 했다. 상처가 난 곳에 병균이 침투하여 생기는 병인데 의사 선생님도 의아해하셨다. "무슨 일 하세요?"
이미 사타구니까지 세균이 침범하였는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허벅지를 보니 솔직히 걱정보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따다다다 따다다~~
따발총처럼 쉬지 않고 쏘아 올리는 나의 잔소리는 "당신을 걱정하니깐, 사랑하니깐"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채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가장의 무게를 생각했으면 건강을 더 잘 챙겼어야지' 하마터면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 미어져왔다.
원망스럽다가도 애잔한 마음, 안쓰러운 마음이 눈물을 앞을 가렸다. 결국 주책없이 쏟아낸 말들이 내 마음에 오히려 더욱 생채기를 냈다. 가장 힘들고 괴로운 사람은 본인일 텐데, 그 마음 헤아려주지 못하고 내 감정만 토해낸 것 같아 쓰라렸다.
부엌으로 달려갔다. 무엇이든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을 씻고, 어묵을 볶고, 냉동실에 얼려놓은 불고기를 꺼내며 지친 그를 위해 따스한 밥을 서둘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