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흐린 날엔...

아들에게 쓰는 편지 1

by 햇살정아

J에게.

어느덧 너와 나의 시간은 13년.

먹기 위해 공부하고, 먹기 위해 운동하는 우리 아들. 먹는 것에 진심인 너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만 나오는구나.


라면밖에 끓일 줄 몰랐던 내가 아들에게 받은 어버이날 상장이 '요리잘해상'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엄마는 엄마가 요리를 잘한다고 전혀 생각한적이 없는데 아들이 인정해 준다니 감사히 받을게. 덕분에 엄마 어깨의 뽕이 힘껏 솟아올랐단다.


제대로 각을 잡고 음식이란 것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시작은 너의 첫 이유식 만들기, '미음'이었어.

음식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미음을 준비하기 위해 계량기, 새 냄비, 새 그릇을 준비하며 야단법석을 떨었지. 그때 외할머니한테 혼도 났어. 유난 떤다고!


"그냥 하면 되지, 왜 이리 소란이냐, 엄마 아빠를 위해 그렇게 한번 해봐라" 등등의 잔소리.


아마 할머니도 엄마를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키워내셨을 텐데... 그것에 대한 사랑은 모른 척 혼자만 자식 키우는 어미처럼 유별을 부렸으니 할머니가 서운할 만도 하셨겠지.


엄마는 네가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면 기뻤고, 네가 입을 꾹 닫고 절레절레하는 날이면 왜 먹지 않을까 고민하며 엄마는 하루하루를 보냈어. 맛이 너무 밍밍한가? 육수를 더 진하게 우려내야 하는가?

그땐 꽤나 심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싱싱한 재료와 함께 우리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물을 데치고, 무치고 먹이고.

그때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단다. 가끔씩 네가 엄마에게 "엄마, 이거 너무 맛있어. 어떻게 만든 거야?"라고 물어보면 늘 한결같이 엄마의 사랑이 듬뿍 들어갔다고 대답해 주곤 했잖아.


맞아, 음식은 마음으로 만드는 거야.


네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그리며 엄마는 간절한 마음 담아 음식을 준비했단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먹는 것에 목숨 바치는 전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4살 때, 우리는 아담한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았어. 그곳은 너에게도 천국, 엄마에게도 천국이었다.

베란다는 좁고 낡았지만 너의 손때 묻은 장난감과 너의 웃음으로 그 공간은 생동감이 넘쳤어.

봄이면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핑크빛이었어. 벚꽃잎 덕분에 달콤한 딸기우유 속에 잠겨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 살았지. 육아의 고단한 순간이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어.

꽃향기에 취해 바지락과 양파, 당근, 호박이 듬뿍 들어간 칼국수를 끓여 너와 내가 호로록호로록 먹었던 그 맛,

사실 맛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행복했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해.




음식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아니, 추억이 음식을 부르는 건가?

오늘같이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은 날엔 너와 내가 먹었던 칼국수가 너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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