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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경 Mar 01. 2020

창틀 아래의 시체 한 구

23살 여름, 9월의 창가에서

습기 가득한 바람이 창 밖에서 불어 든다

봄과 여름, 태동의 종식을 알리는 장송곡

타다다닥 프레스티시모! 귀를 찢는다

숨 가쁜 멜로디에 심장이 스러진다     


하늘까지 차오른 빼곡한 오선을 타고

방울진 것들이 땅 위의 것들과 격돌한다

고개를 뻣뻣이 쳐들던 푸른 것들이

꿈틀거리며 휘어지고 가라앉는다    

 

창틀 위로 찰랑이는 물결을 보아하니

벌써 세상의 반쯤은 잠겼겠구나 

생기롭던 것들이 죄다 빠져 죽었겠구나     


창 밖에서 바람과 소리가 넘어 든다

몇 해 전, 태동의 기억을 곱씹는다

창틀 모서리로 넘치는 방울 하나

벽면을 타고 거뭇한 선을 그려온다


바닥에 뉘인 눈으로 궤적을 좇는다

부서지는 소릴 따라 의식이 흩어진다

수백수천을 되뇌어 닳고 닳은 태동의 기억

매일이 같은 하루에 매여 굳은 지 오랜 몸뚱이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송곡이 반가울 따름     


가을과 겨울을 기다린다

봄과 여름을 기다린다

가을과 겨울과 봄과 여름

겨울과 봄과 여름과 가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장맛비가 쏟아지는 계절

나에겐 끝이 보이고 있었다.


제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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