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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경 Feb 23. 2020

조금 더

22살 겨울, 끝까지 붙잡고 싶은 순간들

죄송합니다. 앞길을 막아 죄송합니다

길가에 우두커니 울고 있어 죄송합니다     


한동안 가득이 품었던 것을

오늘에서야 쏟아내는 중입니다

몰골은 수척하고 핏줄만 도드라져

스치는 바람에도 살점이 툭툭 떨어집니다  

   

괜찮습니다. 밟고 가셔도 괜찮습니다

떨어진 살점쯤이야 삭아 없어지든

밟아 바스러지든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다 끝난 마당에야 무엇이 아쉽겠습니까

이 머리도 곧 굴러 떨어질 텐데     


길가 맞은편 저쪽에

불쌍한 녀석이 있습니다     


겨우내내 비쩍 골아 이제는 끝이래도

얼마나 악착같은지 찍소리 안내고

검푸른 제 살을 붙들고 있습니다     


진즉에 떨쳐버렸더라면

잊혀도 충분히 잊혔을 것이고

삭아서 있던 지도 모를 텐데

기어코 저리 붙잡고 있습니다     


나야 모가지 꺾여 떨어지면 끝이건만,

녀석은 혼자 남아 겨울을 지새울 작정인 게지요

무엇이 그리 미련인지 겨울을 보내겠지요

봄과 여름의 아침과 밤을 추억하며.     



사실은 나도 잘 안다.

이미 다 끝난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내 가슴은 썩어가는 심정을 부여잡고

꿋꿋히 아픔을 쥐어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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