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 봄, 막연함
주홍 달이 낮게 뜬 밤
강길 빗겨 걷다 보니
아직은 바람이 시리구나
검게 솟은 굴뚝공장
어떤 이가 밉다 할까
저리 예쁘게 빛나는데
걷던 길을 잠시 멈춰
불빛 한 번, 강 빛 한 번,
하늘에 별빛 한 번
형산강 강물에 몸 놓아
비친 불빛을 머금고
나, 하늘에 별이 되련다
용광로 뜨거운 불빛을 담아
따스히 끓은 저 강물에
무던히 마음을 녹이련다
그리하면 굳은 마음이
가벼이 흩날리는 연기가 되어
저 짙은 하늘에 닿지 않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본가에 내려와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오래간만에 동창들과 조촐히 모여하는 이야기가
너도 나도 잘난 것 하나 없이 왜 이리 초라한지.
씁쓸한 미소 하나, 위로 하나 서로에게 건넸다.
시간이 늦어 뿔뿔이 흩어질 때, 괜스레 운동이라 핑계 삼아 먼 길을 걸었다. 강변 너머엔 화려한 공장 불빛이 보였고, 강물은 그 불빛을 받아 예쁘게 부서지고 있었다. 문득 강물이 따뜻해 보였다. 따뜻했으면 싶었다. 몸을 따스히 녹이고 싶었다. 그저 안기고 싶었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라는 친구들의 말들이 행복이라 믿고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