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열셋
가르치는 기쁨을 만끽한 하루를 보냈다. 배우는 기쁨도 좋지만 가르치는 기쁨도 만만치 않게 좋았다. 알고 있는 편집 프로그램 활용법에 대한 간단한 노하우를 몇 가지 전수한 것뿐이었다. 고심했던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발사하는 상대방을 보니 재미있고 뿌듯함이 올라왔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발휘해서 상대의 눈에서 반짝이는 배움에 대한 감사함과 경이로운 빛을 계속 보고 싶어 졌다.
이렇게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히 빛나는 학생의 눈빛 때문에 선생님이 되는 것인가 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무렵 곱셈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집에 와서 아버지한테 모르는 것 묻다가 나눗셈까지 배우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아버지한테 배우니 너무 좋고 신기했다. 강한 흡수력과 존경의 눈빛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너무 흡족해했다. 그 뒤로도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관여해서 좀 귀찮긴 했지만 훈계가 아닌 새로운 지식을 아버지한테 배웠던 놀라움이 생각난다. 그때 자부심 그득해서 싱글벙글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급히 설명하고 이해했는지 확인하고자 재촉하는 성마른 성격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찌부러뜨리는 통에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기는커녕 상대를 울게 만들곤 해서 가르치는 것은 거의 포기해왔다. 이번에도 관계가 어그러지고 잘못될까 봐 미리 나의 성마름을 설명하고 목소리 톤이 올라가면 놀래지 말고 신호 좀 보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두세 번 만나 가르치니 처음 두 번 보다는 세 번째가 훨씬 자연스럽고 서로한테 적응했는지 효과가 좋았다.
돌아오는 내내 가슴 가득 찼던 것이 무엇인지 의식하지 못했지만 세상을 다 품을 듯 당당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그것이 전수의 기쁨인 것을 알겠더라. 가르침의 기쁨을 알게 해 준 지인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