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죄
꿈을 꾸었다.
그 여자가 나를 고발했다.
수많은 대중들과 같이 있던 나는 그들 앞에 불려 나갔다.
죄목이 뭐냐고 따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었기 때문에 화가 났다.
그 여자가 고발했다는 것이 더 어이가 없었다.
잘못을 했다면 사악한 그 여자가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목은 내가 예전에 커다란 별을 단 옷을 입고 다녔고 그 별은 유대인을 멸시하는 상징이고 그런 옷을 입고 다닌 것은 유대인들을 차별하고 학대에 동참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나의 거센 항의에 즉석에서 꾸며낸 그 여자의 억측이라는 느낌이 왔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옷을 생각해 내면서 그 옷에 있는 것이 별이었나, 다른 무늬 같은데, 그것도 아는 이가 준 옷인데, 나와는 맞지 않는 취향의 옷이지만 성의를 생각해서 몇 번 입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별만 있으면 유대인을 차별하는 것이냐고 세상천지에 별이 있는 곳도 많고 하물며 미국 국기에도 별이 있는데 그것도 유대인 학대를 뜻하냐며 그것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고 왜 나를 가지고 그러냐며 항의를 했다.
나의 항의는 분명 타당성이 있는데도 별로 귀담아듣지 않는 분위기이다.
일단 거론된 나에게 벌을 줄 의미를 어떻게든 찾아내야만 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그 여자는 미안한 구석이라고 전혀 없이 당당하게 군중 편에 서 있다.
아니 그 여자에게 군중들이 서서 편 가르듯 나를 단죄하고자 한다.
아까 다른 곳에서 그와 비슷한 것으로 나에게 처벌하려는 것을 항의해서 끝난 것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그것을 이곳에서 다시 거론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 그때 그곳에서 그 여자도 나랑 같이 있었다.
상황을 다 알고 있으면서 다시 여기서 거론하는 의도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 나를 타도하려는 누군가의 몽둥이가 내 손에 들려 있었고 그 여자를 칠 듯이 휘두르고 있었다.
몇십 년이 지난 유대인 역사와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이런저런 항의를 나 혼자서 계속하고 있었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 나의 항의는 계속되고, 혼자서 내는 화는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었다.
그 여자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동동거리며 화가 난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니 동물원 원숭이 마냥 구경당하고 있었다.
존중받지 못하고 있었다.
거론된 죄목에 왜 내가 계속 변론하며 항의를 계속해야 되는지 억울하기만 했다.
그렇게 답답한 꿈에서 깨어났다.
꿈이라서 혼란스러운 상황전개이었다.
깨어나서도 무엇을 빠트려서 설득하지 못했는지 근거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왜 그 여자의 농간에 벗어나지 못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항의하고자 하는 말을 계속 찾고 있었다.
꿈은 그저 꿈인데 현실에서 분리하지 못하고 그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그 답답함의 원인은 내 마음속에 있는 감정이었다는 게 순간 뇌리를 스친다.
그 여자를 신뢰할 수 없는 감정, 그것으로 인한 불안이 안개처럼 내 마음을 흐릿하게 만든 것이다.
그 여자에 대한 불신을 드러낼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없애지도 못하고 감정만 커진 것이다.
나의 반감이 그 여자를 자극했고 그 여자는 나를 옭아맬 사실을 던진 것이다.
그 사실이 어이없는 것이든 근거 있는 것이든 상관없이 죄인으로 거론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이 그 여자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죄인으로 불리었다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나중에 죄인이 아니면 말고 그 여자는 아무런 양심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이에는 불신이라는 나의 감정이 인해 그 여자가 미안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유! 글쎄, 저 사람이 이러이러했다네'하는 오명을 붙여 놓으면 알아서 본인이 자신의 명예를 벗기 위해 발버둥을 치든지 운이 사나워 그 오명을 쓰고 자폭하든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처음의 오명이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기는 틀린 것이다.
이것이 당하는 사람을 억울함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이다.
뭉툭한 쇳덩어리를 계속적으로 두드려대어 연장을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처럼 처음엔 근거 없는 오명이 당사자의 계속되는 항의로 인해 점점 사람들의 뇌리에 의문을 남긴 것이다.
'아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지나치게 항의하는 것 보니 뭐가 구린 게 있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저 번에 인사하는데 무시하고 지나가더라고. 사람이 좀 그렇더라고.' 등등
구경하는 사람들이 근거 없이 냅다 던져 보는 한두 마디 말들이 당사자 한 사람에게는 쓰레기더미가 되어 그 속에 묻혀 질식하게 된다. 점점 항의하는 그의 목소리는 커지지만 군중의 목소리에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모파상의 소설 [노끈]에서 주인공 노인도 그렇게 말려들어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의 말이나 노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시장상인의 말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상인을 향한 감정을 분리하여 견제하지 못한 그 노인의 잘못이다.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읽고 자신을 설득해야 했던 것이다.
꿈속에서 그 여자에 대한 반감으로 균형을 잃고 휘말린 것이다.
결국 나는 내게 죄인이었다.
그 여자와 군중이 나를 죄인이라 해서 죄인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나에게 죄를 지은 것이다.
그들에게 항의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항의하고 나를 이해시켜야 했던 것이다.
반대로 밖을 향해 계속 설명하고 항의하고 있었으니 통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도 바보 같은 내가 답답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