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가족은 무엇인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엉킨 작은 인간 사회.
그 테두리가 얼마나 안온한가.
그 테두리가 얼마나 큰 족쇄인가.
보호가 되던 울타리가 점점 좁게 느껴지는 것은 성장해서인가 세상을 섭렵하려는 자유 때문인가.
긴 시간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인간들은 가족이란 테두리를 만든다.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사랑받으며 성장한다.
성장하면 그 테두리를 벗어나 자기만의 가족을 구성한다.
보여주기 위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보여주고자 하는 가족은 가족이 아니다.
보여주기식은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커서 그 기대에 짓눌리게 된다.
잘 보이고자 하는 것은 사랑보다 의무를 강요하게 된다.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결국 증오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한 곳에 밀착해서 사는 것이 가족이라 하지만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하면 서로가 원치 않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서로를 감시하고 비난하고 지치게 된다.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다.
거리 두기가 사랑이다.
동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공간을 침범하지 못하게 영역을 설정하며 함부로 침입하지 않는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며 이성적인 인간에게는 더욱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 살아가야 하는 허약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거리 두기가 필수이다.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하면 수직적인 질서와 강요로 보호받고 보호하기보다는 기대와 욕망이 난무하여 그것들이 칼이 되어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오늘도 아이와 다툼이 일었다.
마음도 상하고 감정이 통제되지 않아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후회되는 마음과 원망이 엇갈리며 더 이상 보기 싫었다.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다.
눈이 내려 소복소복 쌓인 눈을 걸으며 흥분된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래도 쌓여 있는 스트레스가 안개처럼 밑바닥에 깔려 있어 얼굴이 굳어 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들이 벤치에 잔디 위에 돌계단에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나도 부드러운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고 싶은데 손 시린 것이 싫고 눈이 녹아 젖는 게 귀찮아서 눈만 밟고 지나갔다.
나보다 좀 더 나이 드신 아주머니가 혼자서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그 모습이 이쁘다.
감정에 파묻혀 겉돌기만 하는 내 모습은 볼품이 없겠다 싶다.
이리 좋은 설경을 보면서도 좋다 하는 것보단 무거운 한숨을 휴유우 하고 내뱉는다.
그래도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아 감사하다.
사는 게 뭔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리 무거운지 답답하다.
가볍게 즐겁게 살 순 없는 것인가.
눈사람을 찍어서 집에 있는 아이에게 보내주었다.
잠시라도 나처럼 가벼워지기를 바라며.
쌓인 눈에 무거워진 휘어진 나뭇가지도 찍었다.
나무는 힘들겠지만 보는 내 눈은 즐겁다.
온통 하얗게 덮인 세상이 눈부시다.
눈이나 비나 내용물은 비슷하지만 서로 운치가 완전히 다르다.
인간의 시선과 생각은 다른 것이다.
시각이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같이 눈사람을 만들면 좋았을 것이다.
집에 가서 밥상을 다시 차려 오손도손 같이 먹어야겠다.
다투느라 먹지 못한 닭볶음탕을 다시 데워야겠다.
다투다 보니 사랑보다 미움이 더 커졌다.
사랑하는데 미움은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사랑과 미움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밖으로 나와 거리가 두어지니 사랑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공간이든 마음이든 거리 두기가 사랑이다.
하얀 눈은 역시 하얗게 빨래하듯 마음을 깨끗하게 해 준다.
바닥에 쌓인 눈을 뭉친 것인지 눈사람은 생각보다 하얗지는 않다.
그래도 눈사람이다.
내 마음이 눈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