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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 깔린 생각

단순하게 살고 싶다

by 오순

배부르게 먹어도 바닥 모를 허기가 있다.

말을 들어도 뒤가 구린 듯 개운하지가 않다.

보아도 무엇을 놓친 듯 충분하지가 않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하였던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뒤편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모친의 의심증이 생각난다.

유전자가 아닌 이런 습성도 닮을 수 있을까.


의사도 간호사도 같은 병실 환자들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욕한다며 문병 온 가족들에게 일러바치던 모친이 생각난다.

본인을 간호하고 난 뒤 다른 환자를 간호하면서 그 환자와 웃으며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자기를 흉보는 거라며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질투를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자기 욕한다고 믿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당시는 왜 저러시는 것일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모친의 말이 남들에게 들릴까 봐 염려도 되었다.

큰소리로 시비를 걸거나 따지지 않고 상대가 들을까 봐 귓가에 소곤댔으니 얼마나 다행이던지.

낭자머리를 고수하던 고집만큼 남을 믿지 못하는 아집은 여전하였다.

그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등신 소리를 들으며 눈을 흘기며 핀잔을 들여야 했다.


어느덧 모친의 나이대에 가까이 접어들면서 변하는 자신을 느꼈다.

핑계를 대자면 모친한테 배운 것이고 닮은 것이라 하겠다.

모든 것을 밑바닥에 한두 가지 깔고 바라보고 있었다.


가령 인터넷에서 모임을 하는 회원이 자기가 무슨 책을 냈다는 든가 회사에서 책임자 자리로 승진했다든가 외국여행을 다녀왔다든가 등등 모임의 내용과 좀 다른 소식을 전하면, 아니 누가 물어보았나 그래서 뭐 어쩌라고 뭐 특별하게 봐달라는 거냐 그렇게 자랑할 데가 없나 궁금하지도 않은데 말하는 것은 자신감 부족 아닌가 외로운가 자기 포장하고 싶은가 본데 아후 더 허접해 보인다 등등 부정적 생각들이 부지런히 솟아오르고 있다. 그 삐뚤어진 감정을 억누르고 좋아요 부러워요 축하해요 등등으로 응답을 하고 있다.


길을 가는데 금연구역에서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쳐다보면 맞받아쳐다 보지도 못하고 스쳐 지나가면서 '으시~ 뭘 봐 짱나게'라고 중얼거리며 지나가고 있는 나를 본다. 누군가 어깨를 부딪치면 이전엔 무조건 먼저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는데 이젠 '아~' 하고 아픈 소리를 거의 욕 수준의 고함으로 내지르고 있다.


세상에 시비 거는 느낌이다.

왜 이러는 걸까.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너저분한 마음이 언제 싸악 정리가 될까.

남에게 이 생각들 들키지 않고 무사히 살 수 있을까.

이전처럼 단순 평화롭게 보이는 대로 살 수 있을까.


이런 불편한 마음들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존감이 떨어져서 불만투성이가 된 것일까.

아니면 진짜 그들의 마음이 보이는 것일까.


싸움을 피해서 사는 내가 과연 시비를 먼저 거는 것은 아닐까.

시비 걸어서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일까.

진정 나는 어떤 마음일까.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 진짜일까.

밑바닥 마음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를 향한 것일까 세상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정신 병동을 향한 것일까.


조심하지 않으면 이러다 왕따 되겠다.

나이 들어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자기주장만 하고 상대방 말은 건너뛰어 버리는 볼썽사나운 노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나이의 무게만큼 생각도 무거워진다.


쓸데없는 나이숫자만큼 쓰레기 잡념들을 덜어낼 묘안을 생각해 내야 한다.

생각을 쓸어가는 청소부는 없는 것인가.

생각은 왜 끊임없이 생기는 것일까.


세상을 오염시키는 아집들을 어찌 처리해야 좋을까.

아무리 청소해도 또 생기니 청소하다 삶을 마감할까 염려스럽다.

남은 생을 즐기면서 가고 싶은데 이런 일이 생기니 난감하네.


아~ 단순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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