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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까기

기다려주기

by 오순

수영장에 가면 나이 든 아주머니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말을 쉽게 걸고 간섭을 하기 때문이다.


수영복을 입고 있는데 입혀주려 손이 먼저 터치를 한다.

요청하지 않은 도움에 놀라게 되는데 그 놀람도 자신의 호의로 덮어버린다.


친밀하지 않은데 친밀하게 밀고 들어오는 것을 질색하는 사람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비누칠한 손이 등 뒤로 와서 수영복 끈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고맙지 않은데 고맙다 했다.

오히려 불쾌한데 고맙다 하는 상황이 짜증 난다.


샤워실이나 수영장에서 말하면 귀가 먹먹하다.

얼마나 친한지 모르겠으나 삼삼오오 수다 중이다.

그 친목에 끼이지 않기 위해 생까는 중이다.

얼굴을 인식하지 않기 위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수영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옆분의 백팩에 오리발 인형이 달랑거린다.

초록색에 노란 테두리가 달린 인형이 앙증스럽다.

같이 탄 관리자 한 분이 연신 감탄을 하며 만져본다.


딸이 달아주었다며 조금은 어색한 듯 자랑스럽게 웃으신다.

그분이 민망하지 않게 미소로 응답했다.

나 같으면 속으로 예쁘네 하고 말았을 것을 어디서 났느냐며 연신 말을 거는 그 사람이 참 신기했다.

사람들과 친밀도가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나와 다르구나.

내리면서 깍듯이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한다.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달려서 앞질러 간다.

무심히 바라보는데 오리발 인형이 백팩에서 찰랑거리는 게 보인다.

'엘리베이터 그분이네. 나이가 상당히 있어 보이는데 달리면 위험하지 않나. 급한 일이 있으신가 보네.' 생각하며 걷는데 내가 건너는 신호등 앞에 그분이 서있다.


외투에 달려 있는 모자가 눌러쓴 모습이다.

오리발 인형이 아니었으면 그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왠지 아는 척하기가 어려운 분위기이다.


뭔가 배척하는 생까는 느낌이다.

안다고 하기도 어렵고 모른다고 하기도 어렵다.

나를 탓하는 듯한 느낌이 싸하다.


집을 향해 가는데 계속 그분이 앞서가고 있다.

같은 방향이었나 보다.

두 번째 신호등을 같이 건넜다.

이러다 집 근처까지 가면 난감하겠다.


세 번째 신호등에서 그분이 비켜 올라간다.

음 여기서 갈라지 가 보다.

다행이다.


멀어져 가는 그분의 뒤태에서 많은 감정이 읽혔다.

그분의 생까기에는 생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생까기를 당해서 생깐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이전에 나를 아는 듯한 분위기이다.

아마 오가며 같은 방향이라 수영장에서 나를 본 것일까.


생까기는 혼자만의 편리한 도구가 아니었구나 싶다.

본인이 보지 못하는 뒤태에 마음이 드러나 있구나.

그것을 누군가는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에게 숨기 위해 머리만 감추는 꿩처럼 뒤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모르고 남들이 알고 있었을 나의 생까기가 생각났다.

상대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나의 어색한 불편함을 모면하기 위해 거리 두기의 도구였던 생까기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상처 주려는 마음은 없으나 일시적인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겠구나.

처음엔 생까는 나를 무시하고 싫어할 수 있지만 지속되는 관계가 아니니 그들도 그들만의 공간에 머물 것이다. 어차피 더 이상 친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니 그 정도 거리 두기는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인정하리라 싶다.


친하지 않은 데 친한 척 질척대는 것처럼 어색한 것이 없다.

생까기는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나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나에게 적응되도록 기다려야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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