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독립
많은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특히 도심에서는 집을 소유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수요가 공급에 비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도심의 인구 집중으로 인하여 공간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어릴 때는 집에서 밥 먹고 잠자고 나면 주로 마당이나 골목길 동네 공터에서 놀았다.
형제자매들과 다투면 곳간이나 뒤뜰 작은 대숲이나 들로 쏘다녔다. 그러다 심심하면 다시 어울려 놀고 또다시 다투곤 했다. 어느 한정된 공간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서 다툼의 감정이 쉬이 사그라들고 금방 잊었는지 모른다. 굳이 화해시키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어울리곤 하였다.
어떤 때 진짜 혼자 있고 싶으면 주로 너저분한 다락방에 들어갔다. 켜켜이 쌓여 있는 짐 속에 누워서 아무 잡지나 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먼지들로 숨쉬기 힘든 다락에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며 밥 먹으라며 찾으러 왔던 엄마가 생각난다.
도시로 나와 방을 얻어 자취를 하게 되고 그 방 하나를 자매들과 공유하였다. 다투면 갈 곳이 없는 게 흠이었다. 퉁퉁 불어 터진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가면 바로 사람들 눈에 띄니 창피해서 방 안에서 뭉개다 보니 정말 답답하였다. 주머니 사정이 빈한하여 차 한 잔 마시러 가기도 사치였다.
공원은 멀고 작은 그 공원에 어쭙잖게 설렁거리다가는 놈팡이들이 집적대 귀찮아지고 꺼려진다. 놀이터에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공간이라 편하지가 않다. 감정을 털어내고 눈요기를 하러 갈 곳이 없었다.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설움이 복받쳤다.
무엇을 하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도 자기만의 공간 확보의 필요성을 말한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예전에는 대식구들 틈에서 살게 된다.
특히 여자들은 거의 평생을 자기만의 공간 없이 공동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남편은 서재에서 아이들은 아이들 방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다. 그러나 부인은 주부는 엄마는 안방이라는 부부 공동 공간, 거실이라는 가족공동 구간, 부엌이라는 가족 식사 공간, 베란다 등등 그 어느 곳도 그만의 공간이 아니다.
가족 공동 구간이 모두 주부의 공간이라 여기며 따로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만일 집안에서 다른 가족들처럼 엄마가 방문을 잠그고 있으면 가족들의 불편함이 엄청나게 발생하게 된다.
몇십 년 전 엄청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엄마가 뿔났다]는 드라마에서 육십이 넘은 주부가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나간다. 단칸방 하나를 얻어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보다가 내리내리 잠을 자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들이 뭐 하려고 독립하려는지 묻지만 자신도 모른다 한다. 그 주인공 주부는 자신의 공간에서 쉬고 싶었던 것이다.
사무실에서도 쉬이 지치는 것은 아마도 긴 시간 공동 구역에서 일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집에 돌아오면 긴장이 풀리며 드러눕게 되고 그 작은 나의 방이 세상 편한 곳 이 되어 그대로 잠이 들면 아침이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 다시 출근을 하는 루틴이 사회생활이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그토록 원하였던 직장 생활을 때려치우고 싶어 진다. 여행을 가거나 쉬고 싶어 진다. 일이 힘들다거나 상사 때문에 고역이라는 것은 어쩌면 보여주기 위한 핑계이고 진짜 숨겨진 이유는 긴장을 풀고 쉴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의 확보가 아닐까 싶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길거리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꽂고 무언가를 듣고 있거나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장소를 잊고 자신 속에 집중하고 있다.
무엇을 묻기 위해 말을 걸려면 팔이라도 터치를 해야만 한다.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을 차단하고 자신에 침잠하여 있는 모습이 소통할 수 없는 로봇처럼 보인다.
핸드폰, 이어폰, 헤드폰이 아마도 사적 공간 확보가 되지 않는 공공장소에서 가상의 사적 공간을 누리게 해주는 것 같다. 거기에 모자까지 깊숙이 눌러쓰면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아 편해진다. 머리 감을 시간이 없는 날 모자를 쓰게 되면 생각보다 아주 편리하다. 이 모자가 가려 주는 것이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시야도 가려줘서 발걸음이 좌우로 흔들흔들 편해진다.
경제적 독립만이 자유를 주는 줄 알았는데 공간적 독립도 엄청난 자유를 준다.
아이가 방문을 닫으면 불량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부모들은 수시로 방문을 두드리게 된다.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도 자신만의 공간 확보를 위한 본능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다락이든 공원이든 카페 이든 베란다 쪽방이든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가자.
그곳에서 무엇을 거창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며 편하게 노닥거리는 것이다.
그렇게 충족이 되어야 일어나 무엇이든 하고 싶어지고 할 수 있다.
잠을 충분하게 자면 개운해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