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길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며 늦어도 예방접종을 권하는 뉴스를 보면서 해마다 이때쯤의 연례행사이려니 좀 과장된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니 독하긴 한가보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이가 감기몸살 증세가 있는 것 같다며 징징거렸는데 밤새 갑자기 열이 엄청 오르고 오한이 들며 온몸이 아프고 쑤셔서 잠을 못 잘 정도로 심하게 아팠다 한다.
세상에 태어나 너무 아파서 그대로 하직하는 줄 알았다 한다.
깨우지 그랬느냐니까 침대에서 일어날 힘도 없었다 한다.
쓰러질 것 같아 병원 동행을 원하는 아이를 보며 잠만 잔 내가 엄마인가 싶다.
열이 오르락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아 주머니에 넣고 병원에 갔다.
요즘 성행하고 있는 A형 독감이라 한다.
너무 독해서 약만으로만 안 된다 하여 수액치료제를 30여 분 맞았다.
그러고 나니 통증이 좀 가라앉아 살 것 같다 한다.
목이 아파 말도 제대로 못 한다.
죽을 싫어해서 아플 때도 밥을 물에 말아먹는 아이라 뭐를 먹여야 될지 걱정이다.
어제 사다 놓은 체리를 주니 씨를 발라 달라 한다.
목이 아파서 입속에 넣고 씨를 발라낼 수가 없단다.
그나마 좋아하는 체리라도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밤새 앓고 있는 자식을 두고 열심히 잠을 잔 미안함과 엄마의 사랑을 담아 체리의 씨를 발라 입속에 넣어주니 상큼하다며 겨우 웃는다.
아무리 부모라도 아픈 당사자 아니면 그 아픔의 강도를 알 수 없다.
자식이 아플 때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 힘들다.
몸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원망스럽다.
한 몸이면 내가 대신 아프면 오히려 편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배는 고프다. 눈치 없는 식욕이다.
아픈 와중에 엄마에게 바이러스 옮겨갈까 봐 마스크 쓰라 하고 스스로 격리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다 자랐구나 싶다.
나이가 많든 적든 부모에게 아이는 항상 돌봐야 할 어린 자식이다.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옆에 있어주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그런데 열심히 옆에서 자고 있으면 다 필요 없다는 생각과 서러움이 밀려온다.
이런 서러움과 원망은 자식이나 부모 간에는 쉬이 잊힌다.
그런데 남편에 대한 원망은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새록새록 새로워진다.
왜 그러는 걸까.
남이라서 그런 걸까.
기대가 커서일까.
동등한 위치라서 그럴까.
해준 것보다 받은 게 없다는 계산 때문일까.
오랜 세월 살다 보면 남도 가족이 된다는데 가족보다는 원수가 되는 것 같다.
늘그막에까지도 티격태격 격투가 벌어지던 부모님이 생각난다.
나이 든 부부의 정 깊은 모습은 고사하고 회오리 같은 그들의 감정 폭발이 그리 고와 보이지 않았다.
아름답게 그려지는 노부부의 모습은 상상의 것일까.
우리 부모님만 그리고 우리 부부만 그렇지 못한 것일까.
어떤 모습이 진정한 모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삶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아무리 포장해도 삐져나온다.
겨우 잠든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며 열이 오르기 전에 먹일 것을 생각해 본다.
목이 시원하게 주스를 사다 줘야겠다.
별다른 것은 없지만 엄마의 손길은 약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