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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에서 벗어나기

자신의 일을 하는 것

by 오순

프릴 블라우스 증후군(frilly blouse sydrome)이란

강력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이 여성성을 상징하는 잔주름으로 장식된 블라우스나 긴 치미를 입고 쿠키를 굽는 등 자신이 남성성을 위협하지 않는 여성임을 드러내려는 증상을 말한다.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누군인지 잊고 있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길 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때 드러나는 증상 중 하나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을 찾아 소홀했던 마음을 회복해 보고자 한다.

이때 이런 더불어 가려는 마음을 소심함이 아닌 질병처럼 분류되는 것이 좀 뜨악하다.


세 번의 이혼과 결혼을 지인이 자신의 꿈이 현모양처였다 하며 한탄하다. 자신의 현실은 자신의 소생은 없고 남이 낳은 자식이나 키우며 살고 있다 한다. 현 남편 역시 사업을 말아먹고 그녀가 일을 해서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이혼을 할 수도 없어 유지하는 결혼생활은 너무나 팍팍해 보였다. 조용히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으로 아이 키우고 내조하며 우아하게 지내는 것이 그가 그리는 현모양처의 그림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아니 어떻게 현모양처가 꿈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싶어 그 지인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인형이 되고 싶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보통 꿈이라면 자기 성장을 포함한 것이지 박제된 인형처럼 상자 안에서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욕망이지 꿈이 아니지 않은가.


남편을 내조하고 아들 이이를 훌륭히 키워낸 신사임당을 우리의 역사는 현모양처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그의 재능도 현모양처를 칭송하기 위한 소재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녀가 원하는 삶이 과연 현모양처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재능을 살리는 것이었을까.

그저 사회가 원하는 대로 그를 평가했을 뿐 개인적으로 그녀는 그저 사회가 인정하지 않은 자신의 재능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프랑스 화가 로자 보뇌르가 자서전 인터뷰에서 자신이 언제든지 치마를 입을 수 있지만 작업의 필요상 바지가 편하고 손질하기 쉬운 짧은 머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에 사회가 원하는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 프릴 블라우스 증후군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자신의 작업을 위해 편리함을 추구했을 뿐 자신이 여성임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과연 그의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는 시선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시선 속에서 최대한 자신의 작업을 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였고 그 자유를 누린 것이다. 그런 그의 행위를 혁명이라 칭송하든 증후군이라 비난하든 그녀는 상관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마리니콜 베스티에라는 프랑스 화가도 이 증후군의 한 예로 들먹이고 있다. 아이를 케어하며 동시에 남편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그의 자화상을 보면서 그녀가 프릴 블라우스 증후군이 아니라 사회고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고자 붓을 놓지 못하는 그의 의지가 보인다.


그 화가가 현모양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원한 것이다. 지속적으로 그림을 추구하는 그를 사회가 이도 저도 아니라며 비난한 것이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계속했다는 것이 그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세상이 뭐라 하든 자신의 일을 놓지 않은 것이다.


어느 사회이든 구속과 불편한 제도는 항상 있다. 그것에 항의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자신의 일을 추구하면서 부딪쳐가며 부당함을 표현하는 것이 제도 개선을 하는데 일조를 한다고 본다.

물론 직접적으로 개선에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도 선택일 뿐이다.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회적이든 직접적이든 개선에 참여하는 것은 같다고 본다.


시선에서 벗어나고 벗어나지 못하고는 개인의 선택이지 비난할 것이 못된다.

비록 혁명가는 되지 못해도 숱한 사람들이 그 제도 속에서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그들 하나하나가 혁명가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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