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
눈이 펑펑 내린 다음 날이다.
온도는 올라가 덜 춥기는 하지만 아직 눈이 녹을 시간이 없었나 보다.
곳곳에 쌓인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는 기분이 좋다.
새 발자국 개 발자국 고양이 발자국 사람 발자국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가운데 나의 발자국도 새겨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구름을 뚫고 겨울 해가 나타났다. 그 따스한 햇살로 인해 벤치에 쌓인 눈들이 녹아내렸다. 군데군데 남은 눈 녹은 물기를 제거하며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나눈다.
아직 추워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흔들의자에 앉아 가지고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마시며 하늘도 보고 눈 잔디도 보았다.
눈 잔디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엉거주춤 자세로 있다.
뭐 하는 걸까.
날아다니는 까치를 보는 걸까.
일어나더니 눈을 긁는 시늉 하며 고양이가 무언가를 덮고 있다.
설마 이 오픈 장소에서 수많은 시선 앞에서 배설을 했다는 말인가.
하하 대단한 놈이구먼.
저기 저 눈 잔디는 피해서 가야겠는데 표시도 나지 않는다.
눈을 밟고 돌아다녔더니 운동화 위에까지 올라온 눈이 녹아 발가락을 적셔 발이 시리다.
호숫가에 오니 햇살이 더 따사롭다.
둥근 호숫가를 따라 벤치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벤치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누군가 닦아 놓고 놀다 간 벤치에 앉아 운동화도 말리고 등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수다를 떨었다.
누군가 먹이를 주었는지 비둘기 한두 마리가 사람들 사이로 가까이 날아든다.
눈앞에 떨어진 것을 쪼아보더니 과자 부스러기가 아닌 씨앗이었는지 뱉어낸다.
머뭇거리며 둘러보더니 다른 곳으로 고개를 노처럼 앞뒤로 흔들며 걸어간다.
저만치서 두세 살쯤 되는 아이가 뒤뚱뒤뚱 달려 나오는 게 보인다.
바로 코앞이 호수인데 사람들이 '아이고! 어째!' 할 때쯤 보호자가 뒤늦게 나타난다.
호수가 얕아서 보호망을 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근처에 서성거리니 위험해 보인다.
날이 풀려 얼었던 호수가 군데군데 녹아 있었다.
아이는 비둘기를 쫓아 내려온 듯 계속 비둘기를 쫓아 뒤뚱거리며 호숫가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가고 있다.
보호자가 옆에 있기는 한데 말만 앞설 뿐 행동이 느려터져 보는 우리들 심장이 쫄아들고 있었다.
계속 그렇게 아이를 제지하지도 손을 잡지도 않는 보호자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투덜거리는 나를 보며 동료가 아이 엄마가 다 알아서 케어할 것이라며 자제시킨다.
한가로이 햇살을 즐기던 나에게서 햇살을 가져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화가 난다.
사고는 순식간인데 보호자가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어하는 엄마 맘이야 이해하지만 보는 우리를 너무나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 나의 여유로움을 누릴 수 없어 더 화가 난 것 같다.
'사고가 나야 보호망을 설치하겠구먼' 하는데 아이가 쫓는 바람에 우리 위로 푸드덕 날아오르는 비둘기가 낸 먼지바람을 맞아 내 인상은 더 찌푸렸다.
비둘기가 좋아서 쫓아다니는 것인지 괴롭히려고 쫓아다니는 것인지 놀자고 쫓아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고양이처럼 아이는 비둘기를 쫓아 엄마와 호숫가를 떠났다.
휴! 다행이다.
햇살이 눈부시고 따스해서 다시 몸은 푸근해지고 생각 없이 말들이 쏟아져 내린다.
화장실도 가고 싶고 목도 마르고 배도 좀 고픈 것 같다.
이 따스함을 두고 가는 게 아쉽지만 벤치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