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오늘은 한용운 님의 시 "그를 보내며"에 꽂혔다.
그는 간다. 그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요,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간다.
그의 붉은 입술 흰 이 가는 눈썹이 어여쁜 줄만 알았더니 구름 같은 뒷머리 실버들 같은 가는 허리 구슬 같은 발꿈치가 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걸음이 걸음보다 멀어지더니 보이려다 말고 말려다 보인다.
사람이 멀어질수록 마음은 가까워지고 마음은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보이는 듯한 것이 그의 흔드는 수건인가 하였더니 갈매기보다도 작은 조각구름이 난다.
아기가 잠든 틈을 이용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펼쳤는데 이 시가 눈앞에 선물처럼 등장하면서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정말 오래간만에 느끼는 정서이다. 이 나이에 느껴지는 감상은 담백하기보다는 복잡다단하여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나온 '아 님은 갔습니다~'하고 외웠던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도 더불어 생각났다. 시가 구체적으로 생각났다기보다는 '아 님은 갔습니다'라는 싯구만 떠올랐다. 다른 시나 시조들에 비해 산문처럼 길어서 외우기 힘들었던 기억도 난다.
언제 사놓은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 이 한용운 님 시집이 갑자기 방금 서점에서 산 것마냥 새로워진다. 나이 들어 읽는 시는 새로운 감성과 생각들로 그득 차게 한다. 어찌 이리도 보석 같은 언어를 구사할까 감탄스럽다. 버릴게 하나 없는 묘사이다.
시를 산문처럼 쓰는 기법도 그러하고 구도자처럼 읊조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정결한 시다. 암기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아마도 산문을 읽는 느낌이라서 그렇지 않나 싶다. 아니면 삼사조나 사사조 같은 리듬이 아니라서 그럴까. 읽을수록 뜻은 깊어만 간다.
일제강점기 험난한 시기에 나라를 구하고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독립을 주장한 운동가 중 한 사람이었던 한용운은 안타깝게도 독립을 보지 못하고 해방 한 해 전에 타계했다. 현실참여를 주장한 승려이기도 하다. 대중을 떠난 구도자는 대중을 이해할 수 없다며 승려의 결혼을 적극 주장하였으며 본인도 결혼을 하여 자식을 두었다.
시 자체에서 느껴지는 의지가 강렬하다. 시인의 '님'은 독자에 따라 아주 다양한 뜻을 품을 수 있어 더 풍요롭게 느껴진다. 그 시속에 시인의 뜻과 의지가 아주 굳세어 보인다. 그 님을 향한 의지는 촛불처럼 간절하면서 끝까지 타오르는 불꽃이다.
이런 그는 혼란의 시기이든 평화의 시기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우적우적 힘 있게 걸어갈 것만 같다. 그 힘이 후세에 길이 뻗히기를 바란다. 그를 기리며 '님의 침묵' 일부를 복기해 본다.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나 있는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