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청소부의 운동

시야

by 오순

이른 아침 볼 일이 있어 집을 나섰다.

혼잡한 출근대를 피하기 위해 한두 시간 일찍 서둘렀다.

운동 겸 산책 겸 공원을 거쳐가는 길을 택해 지하철역을 향했다.


새벽이라 하기에는 좀 늦고 출근시간대라 하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라 공원은 한산하였다.

평소에는 운동하는 사람과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공원이다.

영하 7도의 겨울 이른 아침이라 공기가 좀 매섭게 싸늘하다.

피부를 자극하는 이 싸늘한 공기를 좋아하여 마스크는 주머니에 넣어둔 채 걸었다.

좀 추웠지만 패딩에 부착된 모자도 쓰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는데 저만치서 연두색 형광빛 작업복을 입은 청소부가 주위를 쑤욱 둘러보더니 갑자기 무릎을 가슴팍 가까이까지 들어 올리며 폴짝폴짝 걷는다. 설마 운동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한참을 눈여겨보았다. 그는 공원 잔디밭 중간을 가로지르는 나무 널빤지 디딤돌 건넛길을 그렇게 운동하는 자세로 건너갔다.


그 청소부는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여 운동을 한 것 같다. 청소부가 그런 복장으로 운동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웃음이 났다. 본인 눈에 아무도 안 보이니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운동을 한 것이다. 볼 사람은 다 보는 데 본인만 모른 것이다. 그런 눈에 확 띄는 연두 형광빛 작업복을 입고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라 단정을 하다니 바보 아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눈이 중심이 되어 자신의 시야 밖의 일은 신경을 안 쓰는 것이 꼭 나의 행태와 닮았다.

볼 사람은 다 보고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데 자신만 모른다.

나쁜 짓이나 거짓말도 자신이 들키지 않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속인 것이지 세상을 속이지는 못하는 것임에도 번번이 자신을 속이며 오류를 범하는 우리의 행태를 본능이라고 해야 하는지 어리석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시야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얼마나 보고 얼마나 알겠는가.

다 알면 무엇하러 시도하겠는가 하겠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안다고 착각하는 자만이 문제이다. 하긴 그렇게 자신을 모르니 용감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철역에 다다르니 전철역 외부 난간의 봉에 다리를 척 올리고 스트레칭하는 청소부가 눈에 띄었다. 요새 청소부들에게 운동하라는 지침이라도 내려왔나 하라는 청소는 아니하고 왜들 운동일까 생각하며 그 옆을 일 별하며 스쳐지나갔다.


대로변 옆이라 그는 열심히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청소부 복장인데 운동복처럼 보일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의 태도에 와 용감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어서 그렇게 당당한 것일까 세대가 달라져서 그러는 것일까 한발 밀리는 기분이다.


스트레칭하고 있는 이 청소부는 다른 청소부가 아니고 아까 공원에서 운동하던 그 청소부 같았다. 그도 사람이구나 싶다. 청소부가 청소하나 보다 하고 나무 옆을 지나가듯 스쳐갔는데 운동하는 청소부를 보니 눈여겨보게 되고 그도 청소로봇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임이 느껴진다.


단지 직업으로만 사람을 보게 되면 그냥 기기나 물건처럼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것 같다.

분명 사람인데 보이지 않는 귀신이라도 되는 양 스쳐가게 된다.

그나저나 저렇게 청소시간에 대놓고 운동해도 안 짤리나 걱정되긴 하네.


어련히 알아서 청소 잽싸게 끝내고 스트레칭하는 자유시간을 가졌는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서 쓸데없는 오지랖을 펼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출근시간대의 혼잡을 피해서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 편하게 산책하며 가는 나처럼.

청소 마치고 운동하는 그나 나나 피장파장 아닌가.


청소복 개조해서 운동복으로 만들어도 대박 나겠다.

청소복 입고 운동하는 것 참 신선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혼을 뺏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