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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마주하다

나를 본다

by 오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느끼는 행복감과 그 뒤에 항상 따라붙는 불안감을 마주 바라볼 때 여태 보지 못했던 나를 본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극복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가 보인다.


행복만을 취하고 불안을 피하면 두려움에 지배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도망치려는 두려움 앞에 그냥 있어 본다. 그래야만 나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는 것이 본능이겠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는 그냥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적의 실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에 압도되어 자폭한다.

옛날에 캄캄한 한밤중에 공동묘지에 다녀오는 내기를 한 선비가 공동묘지 무덤 앞에까지 가는 것은 성공했는데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자신의 도포자락을 자신이 밟고 귀신이 붙잡고 있다 생각하여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두려움이 항상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고 실제와 마주하지 못하게 하고 도망치게 한다.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은 어찌 보면 실제보다 상상 속 두려움에 압도되어 거대한 공포 앞에 자신을 아주 왜소하게 만든다.


우리의 상상이 현실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진정 자신으로 살아가는데 방해하는 적이 될 수도 있다. 상상은 양면의 칼날이다.

아주 소소한 일에도 우리는 걸려 넘어져 일어서지 못할 때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울고 있는 것이다.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 속 두려움에 압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깟 일에 널브러졌다고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며 자신을 갈구게 되어 더욱더 깊은 수렁 속에 자신을 몰아넣는다.


그냥 쉬면 된다.

지치면 사소한 일에도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쉬다 보면 일어서게 된다.


어서 빨리 일어나라고 자신에게 채찍질하면 댓자로 뻗어버리게 된다.

빨리가 아니라 회복하는 데 더 시간이 걸리게 된다.

아무 생각 없는 게 답이다.

본능에 따르는 것이 최고의 답이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쉰들 어떠랴.

하루 일하고 삼일 쉰들 어떠랴.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고 일도 있고 삶도 이어진다.


두려움은 마주하면 잡아먹히지 않는다.

나는 나이고 두려움은 그냥 두려움일 뿐이다.

무서우면 멈추면 된다.


다 살게 되어 있다.

마주 보고 제대로 파악한 뒤 도망쳐도 늦지 않는다.

스스로를 믿자.

삶을 믿자.


두려움은 마주 보게 되면 사라지지는 않지만 나를 압도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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