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중독이라는 것에 빠져든다. 자신은 절대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성실한 자라고 믿는다. 그러나 제삼자가 볼 때는 핑계일 뿐 다 중독이다.
거의 일 년 가까이 수영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정기권을 끊어서 거의 1주일에 하루나 겨우 쉬고 매일매일 수영을 간다. 그러다 보니 몸이 너무 피로하여 감기몸살기와 곡예를 한다. 입안에 혓바늘이 돋는 것은 거의 다반사다.
이삼 년은 기본이고 그보다 더 오래된 수영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온몸이 파스로 도배하거나 뜸뜨기로 수놓은 등판을 하고도 수영을 하러 온다. 왜 저리 필사적인가 의아한데 다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빠져들고 있다. 수영이 좋아서라기보다 수영을 쉬면 아예 나가지 못할 것 같고 그러면 그대로 뒤처질 것 같아 쉬지 못하는 것이다. 수영하러 가기 싫어도 날마다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나오고 있는 것이다. 샤워라도 하자 아니면 물속에서 살살 놀며 돌지 하며 나온다.
운동 중독이라기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한 필사의 투쟁인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몸을 믿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자신의 몸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늙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포장성 중독인 것이다. 그것을 운동중독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고 버티는 이유가 운동중독이라서가 아니라 퇴화의 공포에 압도될까 봐서이다. 그러다 도저히 안되면 약을 먹고 파스를 붙이고 뜸까지 뜨면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운동중독이 아니다. 몸의 노화와의 전쟁인 것이다.
요가강사인 지인이 하소연한다. 온몸에 근육과 인대가 손상되고 찢어지고 염증이 심해 자가치료해 주는 주사를 맞고 있다고 한다. 울면서 운전대를 잡고 수업에 나간다고 한다. 수련과 강의를 겸하면서 그녀도 나이대가 있으니 도태될까 봐 몸을 혹사해 가며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쉬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이를 인정하면 도태될까 두려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자신을 속이고 참으라며 버티는 것이다.
참다한 심정이지만 자신이 두려움에 압도되어 자신을 혹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인정하면 할 수 있는 만큼 하게 되고 그렇게 해도 도태되지 않으며 공포에 쫓기지 않을 수 있는데 무서움을 너무 무서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진 것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가 너무 심하다. 어느 정도 잃어도 나머지 가진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하긴 적응하는데도 인정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어찌 보면 두려움은 노화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욕심 때문이다. 잃는다고 진정 잃는 것이 아니다. 잃거나 놓으면 그 빈자리에 들어설 다른 대안이 생기는 것이다. 그 텀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기다려야 한다. 시간은 기다림 속에서 오가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노화가 닥친 것이 아니다. 그냥 갑자기 그것을 인식한 것뿐이다. 노화는 천천히 오고 있었고 몸이 신호를 보냈고 마음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듣는 것 마냥 충격에 빠져 주저앉는 것이다. 도망칠 것이 아니라 외면해 왔던 것을 마주하고 대안을 찾아 처리하면 될 것을 잃는다는 공포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는 초보처럼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숙련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 어느 날 갑자기 늙지는 않는다.
금방이라도 양로원이나 중환자실에 누워 식물인간이라도 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현재 있는 것마저 유지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혹사하여 잃을 수도 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며 스스로를 인식하고 천천히 가야 한다. 중독이라고 자신을 포장하지 말고 두려워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현재의 자신을 아끼자.
자신의 진로를 가로막는 자 무조건 재치고 나아가려는 것은 상대보다 더 잘한다는 자부심을 가져보고자 하는 욕망일 뿐이다. 먼저 가야만 할 이유가 있나 보다 하고 양보하고 가면 여유롭게 갈 수 있다. 그러면 몸도 가벼워져 평소보다 더 잘 떠서 진짜 더 잘 수영할 수가 있게 된다.
양보를 계속 하니 여유가 생긴다. 양보를 계속한다고 호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양보를 받는 존중이 생긴다.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이나 질시가 아닌 배려와 챙김이 있어 편안한 운동을 할 수 있다. 중독이 아닌 개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