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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한 내음

트라우마

by 오순

항상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면 역겨워진다. 고기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를 맡으면 아무리 양념을 첨가해 푹 익혀도 비릿한 냄새가 콧속을 절궈버린 듯 가셔지지 않는다. 생선 특유의 비린내와는 다른 육질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간신히 몇 입을 먹지만 그나마 먹은 것마저 위장벽에 달라붙어 내려가지 않고 소화가 되지 않아 극극거리다 결국 소화제와 두통약을 먹어 간신히 내려보낸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 뒷마당에서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는 어머니를 보았다. 닭모가지를 비틀어 숨을 끊어놓은 뒤 작은 부엌에서 데워놓은 뜨거운 물을 떠 오라는 어머니 요청에 물을 갖다 주었다. 그 뜨거운 물을 숨진 닭 위에 붓더니 잠시 후 털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깃털이 엄청나게 쌓였다. 축 늘어진 모가지와 덮인 흐리멍덩한 눈꺼풀과 가지런히 모아진 두 다리와 발가락 그리고 털이 다 뽑혀 소름처럼 도톨도톨 솟은 몸에 남아있는 털부스러기를 어머니는 차가운 물에 씻어내었다. 거기에서 이상한 비릿한 내음이 났다.


그때는 몰랐는데 아마 그 뒤로 모든 것에서 그 비릿한 냄새가 났던 것 같다. 숟가락과 밥그릇과 국그릇에서 까지 비린내가 났다. 어느 날 밥상 앞에서 숟가락을 냄새 맡는 나를 본 어머니가 어린것이 유난스럽다며 나무라셨다. 유난히 냄새가 심한 날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팠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왜 냄새가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살다 보니 잊힌 것 같다.


다 클 때까지 어디를 가든 그 비린내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네든 친척집이든 어디든 놀러 갈 수가 없었다. 좀 더 나이가 드니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았다. 생긴 것에 비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들 했다. 그 냄새를 극복하기 위해 결벽증이나 병적인 증상으로 치부하며 무시하려 무지 애를 썼다. 그렇게 저렇게 하다 웬만하면 냄새 맡지 않고 먹거나 역하게 냄새가 올라오면 일단 먹고 소화제를 먹었다.


그렇게 냄새 결벽증에서 좀 벗어났다고 그래서 자유로워졌다고 믿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냄새에 더 민감해졌고 맛까지 잃어버려 육류는 먹고 싶지가 않아 졌다. 냄새 때문이 아니라 채식주의 체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며 위로를 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육류를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며 이젠 생선도 먹기 싫어졌다. 나이가 들어 근육손실이 커지니 육류를 먹어야 된다는 데 의무적으로 하려니 더 힘들고 먹히지 않는다. 어차피 나이 들면 근육은 손실되기 마련인데 근육 붙잡는다고 붙잡아지지도 않을뿐더러 붙잡아서 뭐 하겠는가 싶어 포기했다. 편하게 당기는 대로 살 자였다.


채식주의 체질이라서 기 보다 씹히는 식감과 그 비릿한 냄새 때문이라는 것이 이제야 명확해졌다. 아마도 그때 생명손실에 대한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충격을 해결하지 못하고 비릿한 냄새로 거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냄새가 나지 않을 때는 육류나 생선을 잘 먹고 소화도 잘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의 트라우마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며 계속 냄새를 피워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비릿한 냄새에 대한 원인을 알게 되니 자신을 까칠한 성격이라며 부적응자로 탓하던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스스로를 좀 더 편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여전히 비릿한 냄새는 나지만 자신을 탓하지 않으니 거부감 없이 스스로를 대하게 되어 자유로워졌다.


사람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 잠재된 트라우마들이 변형되어 경고등을 켜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 그리고 그 이후 나의 어머니도 몰랐고 나도 몰랐던 비린내의 정체처럼 말이다. 자신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경고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게 되는 것 같다. 자기 자신만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장 모를 수도 있다.


그냥 생각으로 자신을 안 것이지 실제로 자신을 안 것이 아니었다. 생각의 틀에 자신을 맞추어 상상으로 자신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침대에 사람을 맞추기 위해 사람의 다리를 자르는 것처럼 생각에 맞추면 자신을 고통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그 생각 틀에서 벗어나 실제 자신에게 다가가야만 진정한 나와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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