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감정

by 오순

수영장 내에서 충돌 사고로 수영자 끼리 갈등이 커져 형사소송까지 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의도치 않은 충돌이 수시로 일어나는 수영장 내에서 사고가 소송 그것도 형사소송까지 가능한지 감이 오지 않는다. 검색을 해보니 사례가 이미 있고 가능하다 한다. 수영장 관리부실이나 사고로 소송이 가능은 하다해도 수영자끼리의 소송은 좀처럼 없지 않나 싶다. 그것은 사고 때문이라기보다는 감정싸움이 아닐까 싶다.


나이를 탓하는 것은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 들어 갈수록 감정 조율이 안 되고 자신이 무시당하고 손해를 본다고 의심하여 극히 편협하게 감정 표출과 행위까지 하는 등 여러 차례 봐왔기에 위험신호이다 하는 생각을 해왔다. 조금만 감정을 누르면 되는데 참으면 호구라는 생각인지 아예 폭력적이다. 힘이 약해지니 목소리만 커지는 것인지 귀가 어두워져 소리 조절이 안 되는 것인지 도대체 막무가내이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비율이 높아지니 도매급으로 나이 탓을 하게 된다.


나이 들어가는 본인도 그곳에 속하지만 나는 아니다로 위로받고 싶다. 아닐지 길지는 당사자가 돼봐야 알겠지만 먼저 사과한다고 다 자신의 잘못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길게 보면 배려하는 마음이 뻑뻑한 수영장 내 공간을 좀 여유롭게 해 준다. 사람이 너무 많고 노인들이라 너무 느리다. 그리고 자신만 보고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끼어들고 출발하기 때문에 잘 보고 수영하거나 중간중간 멈추는 수밖에 없다.


힘이 약해지니 배려받고 싶지 밀리고 싶지 않은 불안한 마음을 알겠으나 수영이 다가 아니니 천천히 가도 한두 번 양보해도 바보가 아니고 양보받을 기회를 얻게 되는 기회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뭐 어쩌라고 하면서 있는 힘껏 소리 질러 수다삼매경에 빠지는 것도 자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싫으면 느그들이 알아서 피하라 하는 배짱이 과연 집에서도 통하는지 궁금하다.


살날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무시당하는 지름길이다. 무시당했다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이 진짜 무시인 것이다. 듣는 귀를 보는 눈을 생각하며 가는 것이 갈 때 가더라도 지켜야 하는 인간 사회이다.


사소한 사건이 큰 사건으로 번져 수영도 하지 못하고 법정 싸움으로 에너지를 쓰고 있는 그들을 보며 객관적이지 못한 이들이 또 다른 파벌을 이루며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그냥 나한테 닥치면 감정을 자제해야지 현재 진행형인 아슬아슬한 태클들도 있는데 그 사건과는 별개라고 여기는지 자잘한 감정적 텃세는 여전하다.


수영장이 좁아서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수영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위험하다.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개인주의가 낳은 병폐가 아닐까 싶다. 함께라는 것은 폭력을 쓸 때만 인 그들을 보며 무리가 얼마나 허약하고 위험한지 보여준다. 조그마한 조폭집단 같은 그들 무리 때문에 피해는 크다. 더불어 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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