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따지랴
우울이 질겅질겅 씹히고 내장 속에 스며들어 칩거하고 있다. 그 무엇을 하든 이 우울을 밀어 올려야만 시작할 수 있다. 그의 에너지를 먹고 자라는 이 우울을 밀어낼 힘이 너무 미약하여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결국 끌어내려지고 있다.
매번 그를 이기고야 마는 만능 우울을 벗 삼아 살아갈 수 있을까. 항상 싫어하고 무서워하며 도망치던 그의 우울 때문에 그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아니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시간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죽을 때마저도 같이 따라붙어있을 것 같다. 이 우울을 피하는 것이 어찌 보면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르겠다. 이 우울이 그의 본모습이고 피하고자 하는 그가 그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둘 다 다 그의 모습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 그와 그의 우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샴쌍둥이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더욱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인지 온몸이 그 무게에 짓눌려 내려앉고 있다. 늪에 빠진 듯 끌려들어 가고 있으나 쉬어지지도 않는다. 지금도 그것은 그의 중심을 차지하고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있다.
끝부분들의 신경들이 겨우 합세하여 간신히 체면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그를 점령해서 어쩌자는 것일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의도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냥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서 방해만 하는 것인가.
참으로 못됐다.
오늘은 어떤 방해와 잡념이 들어와도 그가 가진 시간으로 버텨내 볼 것이다. 그 시간 내에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이것이 오늘 그의 쐐기 박기 결의이다. 방해받아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버텼다는 것 하나는 하리라. 의미를 따지면 진다. 무조건 버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