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포

예의

by 오순

네다섯 살 남짓 먹은 여자아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신데렐라 책을 찾는 듯하다. '신데레'라고 어설프게 발음을 반복한다. 응답하는 그 아이 엄마의 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진다. 퍼지지 않고 동글동글하게 공 굴리며 뭉쳐서 울리는 목소리이다. 여기는 신데렐라 책이 없고 위층에 있다 한다. 여긴 기증된 책들 중에 맘대로 대출할 수 있다고 덧붙여 말한다.


아이가 알아듣든 말든 상관없이 누군가와 대화하고픈 욕구가 아이에게 쓸데없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좀 뒤에 따라 들어온 아이 아빠 목소리 역시 거리낌이 없다. 갑자기 아이가 왜 조용히 해야 하냐고 묻는다. 아이 아빠는 여기는 조용히 할 필요 없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그 어조에는 눈치 보지 말라는 강요가 있다.


아이는 누가 조용히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물은 것은 그냥 자기네 가족이 떠드는 것이 맞는 것인지 묻기보다 왜 다들 조용한지 궁금하여 묻는 듯하다. 아이는 자신이 조용히 해야 하는지가 궁금하여 물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아빠는 마음껏 떠들어도 되는 것처럼 부러 크게 응답한다.


실내에 몇 사람 있지 않았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일이 분여를 더 떠들다 나갔다. 누군가 싫은 티라도 낼라치면 자기들한테 손해라도 입힌 양 당장 대거리를 할 태세의 목소리로 떠들던 그 아빠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니 할 일 마쳐서 떠나는 것이지 조용해야 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떠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 조용함에 기세가 눌린 것은 아닐까. 그 눌림이 억울하여 더 떠든 것은 아닐까. 놀이터처럼 마냥 떠드는 곳이 아니긴 한데 그들은 놀이터보다 더 떠들 심산이다. 어린이 도서관은 좀 떠들고 아이가 잘 모르기 때문에 소리가 나도 허용이 되는 것뿐이지 사용자들끼리 좀 조용히 해주는 것이 상례일 것인데 그마저 무시하고 들이대는 그 부부의 도덕률이 아이에게 끼칠 영향력에 심히 불편해진다.


알아서 하겠지만 사회로 뻗쳐나갈 아이의 미래가 보인다. 어린이 도서관이기 때문에 어린이가 우선이지 소리를 자제하지 않고 떠드는 것이 당연하지는 않다. 그 미세한 차이를 읽지 못하는 그 무지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권리처럼 무대포로 밀어붙이는 그 우둔함이 아이의 성장에 미칠 것이 어떨지 우려가 된다.


완벽한 인간은 없지만 뭔가 다르면 살펴보고 무슨 차이인지 설명해줘야 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부모의 역할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알면서 무대포로 밀고 나가지 않는다. 아마도 모르기에 우긴 것은 아닐까 싶다. 모른다고 다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누군가 조금이라도 상관했다면 모르는 것이 자랑도 아니고 너는 얼마나 안다고 난리냐며 시비 털 기세다. 이래서 공존이 어려운 것일까. 내가 우선이고 그다음이 네 차례라고 수직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만 주장하면 그것이 무기만 들지 않은 것이지 폭력인 것이다. 무기만 들지 않았다고 피해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고 당당해지는 것은 더 큰 무지이다. 무지가 죄이고 무대포가 폭력인 것이다.


그들이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팀이 더 크게 떠들며 들어왔다가 나간다. 그들의 소리도 소란스럽지만 그들은 남을 보는 공간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똑같이 목소리 줄이지 않고 떠들지만 자기가 우선이라고 들이대는 무대포는 없다. 그저 속삭이기 싫다는 뜻만 그득하다. 속삭인다고 약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작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약하다고 생각해서 조용히 하는 것에 더 저항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소리마다 말하지 않은 의도가 묻어 나온다. 세밀하게 듣지 않으면 다 같은 소음처럼 들린다. 그들 자신도 자신의 소리 속에 무엇이 묻어 나오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들어 두 아이 팀은 소리를 줄이긴 하는데 엄청 크게 속삭여 웃음이 나온다. 자기들 딴에 노력 중인데 물건들도 요란스럽게 꺼내 들고 스슥스슥 뱀 기어가는 소리를 내며 다 들리게 계속 속삭인다.


의도만 예의 있을 뿐 왜 속삭여야 하는지 별로 공감하지 못하고 예의만 지키려 노력하는 것 같다. 언제까지 속삭일 것인지 멈출 줄 모르는 그들의 수다와 물건 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조폭처럼 으르렁거리던 첫 번째 팀과 눈치만 보는 척하던 두 번째 팀의 소음은 그나마 짧아서 다행이었지 싶다. 세 번째 팀의 기나긴 슉슉거리는 소리는 더 민폐가 되고 있다.


엊그제 먼 곳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다른 친구와 동행하여 한 시간 넘게 좌석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멀미를 잘하는 우리는 앞이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계속 이야기할 것이면 뒷좌석으로 이동해 달라는 운전기사의 요청이 들어왔다.


먼 거리로 가는 경우 수다보다는 개별적으로 핸드폰을 하거나 음악을 듣다가 자면서 휴식을 취하는 대부분이다. 그것을 깜박하고 나름 톤을 최대한 낮춰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그 요청이 없었더라면 다른 사람을 방해한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름 톤을 낮추었으니 예를 차렸다고 치부한 것이다.


다행히 자리를 이동하고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도 졸음으로 휴식을 취했다. 저렇게 슥슥 속삭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그 장면이 떠올랐다. 역지사지라고 양쪽이 한눈에 다 보인다. 여기서는 굳이 자제시킬 권한이 없기에 그냥 적응하려 노력 중이다.


저 아이들도 더 크면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배우기 시작하고 실천하려 노력 중인데 기를 더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공부보다는 친구와의 수다가 더 재미있는 그 아이들에게 곁에 가까이 있는 부모가 수다를 자제시킨다면 몰라도 제삼자는 끼어드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법까지는 아니지만 대중에게 지켜야 할 예절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음을 재인식한 하루였다. 예절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치를 취해야 예절인 것이지 내 입장에서 자제한 것은 예의가 한참 모자란 민폐인 것이었다. 다 큰 우리도 충분하게 지켜내기 어려운 공공예절이다. 막무가내만 아니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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