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와 자율
오늘은 나를 가만 놔둬라. 백수에게도 휴일은 있다. 마음 가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둬. 만사가 귀찮은 날이야. 어떻게 그냥 놔두지. 놔두는 게 뭐지. 그냥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어렵다.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뭐 하나 어떻게 알차게 보내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어제까지는 특별한 게 없었으니 오늘은 좀 다르게 뭔가를 해내라는 마음이 신호를 보낸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주일 내내 한 달 내내 볶아쳤으니 오늘은 좀 가만 좀 놔두라고 항의하고 있다. 두 마음이 갈등하는 사이 다른 마음이 배고프다고 끼어든다.
오늘은 계란을 삶아서 먹고 싶다. 찐 감자도 먹고 싶다. 요즘 소화력이 시원찮아 먹는 것을 자제해 오다 보니 먹고 싶은 게 많아진다. 그중 소화불량식품이 특히 더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불량식품은 개고생 할 것을 알기에 감히 시도하지는 못하고 그중 소화 가능한 식품을 고른다. 이것도 계획은 계획이다.
그러고 보면 가만 놔두는 것도 계획이 아닐까. 무계획은 뭘까. 무계획이 과연 존재할까.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계획해야 내버려 둘 수 있다. 무계획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마도 무계획이라는 것은 계획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볶아치는 것을 덜 하는 것이 아닐까.
한마디로 숨 좀 돌리게 한 발 물러서 있으라는 것이 내버려 두라는 무계획이 아닐까 싶다. 내버려 두면 평소 하던 일을 자진해서 좀 여유롭게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진해서 하는 것과 재촉받아하는 것은 완연히 다르다. 내 안에서 두 마음이 갈등하는 이유도 자유와 통제를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모의 통제로 처음 시작할 땐 썩 잘 해내던 아이가 부모의 가중되는 통제 때문에 재미를 잃어가며 반항하듯 내 마음도 그러한 것 같다. 내버려 두면 어련히 잘하려만 그것을 믿지 못하고 조갑증 난 것 마냥 마음이 먼저 설쳐대는 것이다. 지켜보고 내버려 두면 썩 잘 혼자서 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만족감은 득의만만이다.
그러나 그다음 이번에도 잘 해내리라 잔뜩 기대를 걸고 기다리면 폭망이다. 아마도 기대치가 있어 만족을 못하는 것인지 부담감이 심해서인지 엉망이 된다. 매번 잘 되지는 않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일 텐데 다른 마음이 가만있지를 못하고 안달이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무계획하니 나태하다니 생각이 없다니 하며 성화를 피워댄다. 그런다고 무너진 담장을 당장 세울 수도 없는데 아주 기고만장이다. 스트레스로 더 며칠을 부대껴야 정신을 차리려나. 지독한 자책에 일상은 엉망으로 무너지고 며칠을 끙끙대며 폐허 속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제기럴, 뭐 어쩌라고. 내 하고 싶은 대로 살 겨.’ 하는 오기가 이때 등장해 준다. 이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또 이런 반복 패턴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런 것이 삶일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이 삶일까.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는 삶도 삶일까. 숙제를 잘했든 못했든 하는 것이 숙제이듯 삶은 숙제인가.
작은 변화에도 만족하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 일상적 삶이다. 큰 변화에는 기쁨보다 난관처럼 불안이 압도한다. 그러면서 큰 것을 원하는 것은 욕심일 뿐일까.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큰 것을 원하는 욕심 때문에 자신을 자신이 갈구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고 주고 있는 것이다.
변함없는 일상이라서 일상을 넘어 설 사건이 필요해서 스스로 사건을 만드는 것일까. 웬만해서는 외부와의 자극이 크게 없는 백수의 일상이기에 자기 자신과 갈등하는 것인가. 스트레스는 어쩌면 일종의 자극이고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일상에 한 번씩 돌을 던져 물결을 일으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마음이든 세 마음이든 내 안에서 갈등과 화해와 타협과 통제를 그리고 소통을 하고 있다. 마음이 여럿이라고 자신과 대화한다고 정신병동행은 아닐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제정신이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있다고 믿고 그와 대화하는 것이 비정상이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은 정상이다.
치매도 무섭지만 정신병도 무섭다. 둘 다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두려운 것이다. 선을 넘어간다는 것은 죽음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가보지 않은 곳이라 무어라 평할 수는 없지만 여기 이쪽에 있는 한 여기에 있고 싶다. 몸은 여기에 놔두고 정신은 어디 다른 곳에 갖다 놓고 싶지 않다.
내버려 두라는 마음 때문에 마음이 수도 없는 무계획 같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것이 하고 싶어 저것이 하고 싶어 하면서 계속 물어댄다. 친구를 만날까, 산에 갈까, 공원에 갈까, 카페에 갈까, 그냥 드러누워 잘까, 잠이 와야 자지, 술을 한잔 할까, 그림을 그릴까, 재미있는 책을 읽을까, 노래방에 갈까, 막춤을 출까, 시리즈 드라마나 영화를 내리내리 볼까, 쇼핑을 할까 등등.
수없이 물어대는 통에 저인이 산만해지고 다 귀찮아진다. 그래도 물어봐주니 고맙긴 하다. 일단 배고프니 배부터 채우자.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늘도 루틴대로 살아갈 것이다. 대신 결과물 내놓으라고 재촉하지는 않을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편편한 하루가 될 것 같다.
햇빛이 뜨거워지고 있다. 무엇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일찍 잠자리 들었더니 해가 뜨는 시간에 일어나 진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느긋하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먹고 씻고 나도 시간이 널려 있다. 그렇게 앉아 창밖을 보니 햇살이 온 곳을 지배하고 있다. 눈부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니 모든 것이 보인다. 남의 집 베란다에 화분에 올라온 잡초까지 보인다. 새는 보이지 않지만 새소리가 들린다.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지저귀고 있음에 틀림없다. 노래하는 새의 눈을 보고 싶다. 총총대는 새의 몸짓을 보고 싶다. 파리가 한 마리 유리창밖에 붙어 있다. 방충망이 있어 들어오지 못하리라. 내가 보지 못한 어떤 구멍으로 들어오는지 간혹 들어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마음이 느긋하니 몸도 느슨하게 풀어진다. 구태여 무언가 시도하여 긴장을 풀려고 하지 않아도 마음 하나로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긴장이 풀려 있다. 건물 밖 도로에서 들려오는 이웃의 소리들도 거슬리지 않는다. 마치 중간에 걸러주는 무엇을 설치라도 한 것 마냥 소음이 거슬림 없이 흘려들어온다.
반려묘도 가까이서 늘어져 자고 있다. 이 느슨함이 만든 적요가 마음을 고요하게 해 준다. 소음은 있으나 고요하다 할까. 움직이긴 하는데 가만히 있다고나 할까. 한여름 뜨거운 태양아래 늘어진 나뭇잎이 지나가는 미풍에 살짝 흔들리는 것을 포착한 것이 순간 착각인가 싶을 정도로 아주 미묘하다.
느슨하게 시작하였는데 벌써 아침 과정들을 다 마무리하고 나가려고 대기 중에 있다. 계획 하에 움직이던 평상시에는 그런 과정들을 바쁘게 했었는데 느슨하게 하여도 같은 시간 안에 완료가 되었다. 굳이 계획하고 생각까지 곁들여 가며 힘들일 필요가 없는 일상적인 루틴들이었던 것이다.
생각 없이 해도 몸이 알아서 해내는 것이었다. 굳이 생각이 나서서 선도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일상에 많구나 싶다. 계산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고 하는 것이 더 수월하게 정확히 해내는 일들이구나. 하나에서 열까지 세세하게 완벽하게 계획하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대략적인 큰 계획은 세우되 세세한 것들은 느슨하게 맡겨둬도 될 일이었다.
계획은 있으나 무계획처럼 맡겨두는 것이 최상인 것 같다. 그런 자율과 통제가 곁들여진 것이 진정한 통제력인 것 같다. 내 안에 무수한 생각들과 마음들과 하나뿐인 몸이 함께 통제와 자율을 조율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삶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양산을 쓰고 나가야겠지 너무 햇살이 뜨거우니까. 땀나는 것 싫으니 천천히 걸어야겠지. 소화에 안 좋을지 모르니 덥다고 찬물을 벌컥벌컥 얼음물을 동동 마셔대면 안 되겠지. 가서 노닥거리더라도 나가는 게 좋겠지. 보는 눈이 있으니 서가에서 책 하나는 가져와 펼쳐 놓고 있겠지. 그러다 보면 한 줄이라도 읽겠지. 그러다 생각이 깊어져 뜻깊은 글을 하나 써낼지 어찌 알겠는가.
무계획이라 생각하지만 다 계획이 있는 것이지. 스스로가 스스로를 조율하면서 자신이 하는 짓이기에 통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 타인이 해야만 통제라고 자율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하지.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것은 통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것이 자율적인 통제인지 타인의 의도가 내면화된 통제인지 구분해야지. 찐 진짜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이 통제력이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과시용인지 항상 물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내가 나한테 사기당했을 때가 제일 억울하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모른 척하기도 어렵고 몰래 아무도 못 볼 비밀일기를 쓰는 수밖에 없다. 자다가 이불킥이라도 하든가. 대나무 숲에 대고 외치지는 말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