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깃장을 놓다

사회성

by 오순

수영도 잘 마치고 아침밥도 잘 먹고 도서관에 나왔다. 오전이라 실내가 아직은 조용하다. 시끄러워도 이젠 좀 적응돼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긴 하다. 사람이 사는 곳에 쥐 죽은 듯이 아주 조용할 수는 없다.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각자 상황이 다 다르니 그때마다 나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나고 한꺼번에 조용해질 수는 없기에 소음은 항상 있긴 마련이다.


오늘도 배영 할 때 할줌마들한테 단체 지도를 받았다. 어제도 말해주었는데 또 가운데로 들어왔다고 하며 다른 사람한테 들이 받쳐야 정신이 들 거냐며 아주 세게 잔소리들이다. 때는 이때다 하고 합창으로 잔소리를 내지르는 것이 아주 심심했던 모양이다. 후반부라 쉬는 것인지 수영을 끝낸 것인지 출발구석자리에 않자 수다중이던 그들이다. 그중 왕대포 아주머니는 자기가 수영하는 것을 보라고 말은 안 했지만 보는지 안 보는지 쳐다보며 배영을 선보이고 나갔다.


왕대포 아줌만의 배영은 여유롭고 반듯하다. 잘하긴 잘한다. 난 아직 여유가 없어 다른 수영자가 있으면 잔뜩 긴장되어 힘이 들어가 있어 유연하지도 못하고 속도도 느리다. 잠시 다른 것에 신경 쓰면 가장자리로 가지 못하고 가운데로 가곤 한다. 할줌마들이 의도가 나빠서 소리 지르면서 잔소리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정서는 잔소리가 정인가 싶다.


한마디면 될것을 반복하니 그냥 잔소리가 듣기 싫을 뿐이다. 그 잔소리들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니 아주 싫지만은 않다. 아주 신체접촉까지 하신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크고 여럿이 합창하듯 잔소리하니 민망하셨는지 웃으면서 친근감의 표시로 내 팔을 두드리신다.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이어지는 수다를 뒤로 한 채 계속 수영을 했다. 대화가 길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괜찮다.


간섭을 하고 싶은 것인지 잘난 체를 하고 싶은 것인지 대화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욕망으로 "모두들 수영하는 것 보니 개판이야! 자세들 보라고! 엉망진창이라니까."라며 왕대포 아줌마가 소리 지른다. 흉을 보는 건지 지적을 하는 건지 애매모호한 태도로 모두들 들으라는 듯이 내뱉은 말이다.


그녀의 말은 그녀 옆에 있는 친한 사람들마저 민망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그렇다고 옆에서 지인이 뭐라고 말하면 들어먹을 기세가 아니다. 누가 그녀한테 물어본 것도 아니고 궁금하지도 않은 데 ‘누구든 내 말 듣고 덤비려면 덤벼 봐’ 하는 식이다. 욕먹을 말을 당당하게 내뱉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그냥 어쩔 것인데 하는 막무가내 표정이다.


자세히 훔쳐보니 그녀의 얼굴에 그녀만 모르는 ‘심심하니 놀아줘’라는 마음이 보인다. 그와는 반대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에는 꼭 어깃장이 있다. 그녀의 마음과 상관없이 그냥 말투만 저러나 보다 하고 지나가면 별 상관이 없는데 새겨들으면 반발심이 생긴다. 좋게 보아주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퇴근길에 술이 거나하게 취한 가장이 노동에 찌든 작은 체구를 힘껏 굴러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가족들에게 시비 걸 듯 그녀는 시비조다. 체구도 작은 여자가 완력이라도 있다는 듯 거만하게 걸으며 일부러 목소리를 굵고 크게 그리고 거세게 내지른다. 친절을 베푸는 것인지 훈계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시끄러워서 그냥 피하게 된다. 그녀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듯 사람들 주위를 맴돈다. 극히 자존감이 낮고 연약한 마음을 숨기려는 의도인 것 같지만 역효과만 나고 있다. 그냥 그렇게 놀라고 내버려 두면 제자리로 돌아가겠지 싶었지만 그녀는 멈출 줄 모르는 돌처럼 마구 구르는 날이 더 많다. 건들면 더 어깃장 놓는 기질이다.


조용히 비켜서 있어야 흘깃 바라보고 시비는 걸지 않는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관심이 많다. 초급이든 중급이든 상급이든 상관하지 않고 레인 줄 위를 올라타고 건너서 여기저기 나타나 간섭을 한다. 수영은 언제 하는지 모르겠다.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지는 않고 하고는 있는 것 같은데 언제 수영하고 언제 간섭할 여유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수영하기도 벅차서 다들 헉헉대고 있는데 그녀는 아주 자신의 안마당 마냥 돌아다닌다. 눈이 사방팔방에 달린 것인지 모르는 게 없는 듯하다. 얼마나 오래 수영을 하면 저렇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이는 얼마나 먹었는지 궁금하다. 괜히 물어보았다가 낚일까 봐 참고 있다.


그녀의 시비는 관심이다. 그렇지만 관심이 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피한다. 요리조리 몇 달 동안 피하고 다녔는데 언젠가는 마주칠 것 같다. 그때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모른 척하여도 덤빌 것이고 아는 체하면 더 낚일 것이다. 그 중간 어디쯤에 있고 싶은데 잘될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을 자기 휘하에 모임에 끼어 넣고 싶은 그녀의 오지랖에 낚이고 싶지 않다. 싫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알았으면 한다. 남의 마당이 뭐가 그리 좋겠는가 내 마당이 제일이지. 조용히 있고 싶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다르다는 것을 그녀가 배웠으면 좋겠다.


대중을 좋아하는 사람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어디가 모자라거나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사회이고 그들과 어울려야 사회성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중이 싫은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것이 조용하고 좋은 것이다. 정신없이 소란한 대중은 혼란만 부른다.


대중에는 받아들일 양의 한계치라는 것이 있다. 한둘 모이다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만큼 친밀도와 배려가 분산되고 깊이가 옅어지며 이해보다는 오해가 더 많아지고 불신과 분노가 쌓이게 된다. 그 대중이 좀 더 작게 나뉘면 친밀도와 공감도가 다시 돌아온다.


숫자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둘만 모여도 무리는 무리이고 이 무리가 가장 기본적인 사회이다. 어찌 보면 혼자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최소 단위이다. 숫자로 사회성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회성은 배려와 공감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숫자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몰려다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임 속에 숫자가 많을수록 좋은 것보다 피로도만 누적된다. 배려해야 되고 조심해야 되고 공감해야 되는데 받아들이는데 용량이 초과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자신 하나만으로도 버겁다. 그럴 때는 그 누구에게도 베풀 여유가 없으니 당연 혼자 있고 싶다. 그건 사회성과 상관없다. 오히려 사회성의 차원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니 고차원적인 사회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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