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존엄사

by 오순

수영장에 감초처럼 품도 넉넉하고 말도 넉넉한 수영자가 있다. 나이도 지긋하고 오래되어 거의 모든 사람을 아는 것 같다. 사람을 좋아해서 매일 매번 외식이 잦아 살이 찐다고 한다. 살이 찌니 나이가 먹어 무릎이 아프다며 의사가 살 빼라는데 못 뺄 것 같다 한다. 아마도 먹을 것을 좋아하는 데다 소화에 지장이 없어서 많이 드셔서 살이 찌는 것 같다.


아침 수영하러 올 때도 밥을 먹고 온다 한다. 먹지 않고는 기운이 없어 못한다 한다. 체중계 올라갔을 때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아휴 날씬해서 좋겠네 한다. 체중계에 나타난 숫자가 적다고 날씬한 것이라 한다. 건강이 문제이지 나이 들어 날씬하거나 뚱뚱한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관점이 달라 말하면 길어질 것 같고 그러면 수다로 시끄러운 일인이 될 것 같아 미소로 답했다. 그분이 자꾸 말을 걸려고 해서 피했다. 그분은 자칭 마당발에 여기 수다회원들과 엮일 것이 분명하기에 인사만 했다. 좀 서운한 듯 살짝 삐져 있다. 삐짐도 오래가지 않고 포기가 빨라서 편하다.


그분의 지인이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원피스를 사 입었는데 주위에서 괜찮다 하니 가격도 싸다며 다른 회원들이 자기도 사고 싶다 했나 보다. 그것이 입소문이 나서 날마다 옷을 가지고 와서 전했다. 누군가 농담으로 그렇게 팔아주면 커미션 좀 주나 하였다. 자기는 옷장사가 아니라며 귀찮아 죽겠는데 사람들이 요구하니 심부름만 한다고 한다. 가격도 얼마 하지 않는데 남는 게 뭐가 있다고 얻어먹게냐 한다. 진정 마당발이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는 데 회원 누군가가 자기 집 목욕탕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며 수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은 줄 알고 수영장에 가서 씻기만 하고 병원 가려고 수영장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했다. 수영장에서 샤워를 끝내고 나니 멀쩡했었는데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한다. 그렇게 큰 병원에 가서 뼈가 부러진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


어느 뼈인지는 자세히 들을 수 없어 모르겠다. 이름을 대는데 모두들 아는지 병문안 가거나 전화를 해야지 한다. 서로 이름들을 가끔 불러서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매번 가까이서 보던 그 아줌마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하니 아마도 그 아줌마가 목욕탕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진 주인공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그 아줌마가 보이지 않자 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친한 것도 아닌데 안면이 있고 인사도 하고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름을 부르면 인연이 시작된다는데 아마도 거리 두기를 했지만 인사하는 사이이다 보니 인연이 시작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회원들과 친밀감이 싹트고 있었나 보다.


뼈가 부러졌으니 한두 달은 못 볼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잘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모친도 서 있는 자리에서 주저앉았는데 고관절이 부러졌다. 그리고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요양병원에서 고생하다 가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 아줌마는 운동도 꾸준히 했으니 회복이 잘 될 것이리라 빌어본다.


나의 모친은 나이가 팔순이 넘은 데다 나가면 넘어질까 봐 집 안에서만 계셨다. 한 번 혼자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애를 먹은 뒤 그 뒤로는 아무리 자식들이 권해도 나가지 않으셨다. 그렇게 근력이 없으니 힘없이 고관절이 나간 것이다. 고관절이 나가면 나이 든 사람은 거의 회생이 불가능하다. 깁스도 할 수 없어 가만히 누워 지내야 하니 점점 더 근력 떨어지고 나중에는 뼈가 붙어도 다리가 굳어서 일어서지를 못한다. 악순환인 것이다.


사람이 정신은 멀쩡한데 침대에서 꼼짝을 못 하는 것을 보니 옷을 갈아입히듯 구할 수 있다면 어디 가서 육체를 구해다가 교체해주고 싶었다. 육체가 망가져 회복 불가능한 삶은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치매도 문제이지만 다리가 무너지는 것도 엄청난 타격이었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다. 볼 때마다 무너지는 마음이 존엄사를 생각하게 했다. 가고 싶다고 왜 안 데려가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짓는 모친을 보며 교도소에 가더라도 도와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모친을 보며 자연사하게 생명연장을 거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이 불가능한 것 뻔한 데 생명연장은 산자들의 회한을 위한 것은 아닐까. 생명연장거부권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반드시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하는 기관에서 문서로 남겨야 효력이 있다 한다. 병원을 유독 싫어하는 나는 아직도 마음만 있고 그것을 문서로 하고 있지 못하다.


여기 수영장에 유독 노인들이 많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기적이고 추한 면도 간혹 있지만 그들을 보면 삶 자체가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두 발로 움직이며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노인들에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을 것인데 꾸준히 나오는 모습을 보면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싶다.


괜찮으시냐고 물으니 어디 아프지 않은 데가 있냐고 물어보라며 웃으시던 시모가 생각난다. 그때는 왜 저러실까 무엇 때문에 삐져서 저러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 내가 나이 들어가니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하며 아픈 곳이 많아지고 회복도 더딘 것을 경험하고 있으니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겠다.


그 아줌마가 회복되어 수영하러 나오면 응대도 잘하고 많이 웃어주고 해야겠다. 좀 시끄러우면 어쩌랴 눈총 좀 받지 뭐 하는 맘이 들기도 한다. 내가 떠들지 않더라도 그들의 수다에 눈총이 가지 않도록 주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엔 시끄러워서 엄청 놀랐는데 이젠 웬만한 소란에는 익숙해진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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