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비가 온다더니 비는 오지 않고 햇빛이 강하다. 창밖으로 부는 바람과 햇볕에 나뭇잎들이 반짝거리며 출렁인다. 시원한 곳에서 내다보니 보기는 좋다. 밖의 더위 속에 있었으면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창밖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무지 더워하는 게 보인다.
나이 대에 따라 더위를 느끼는 게 다른가 보다. 젊은 사람은 똑같이 무더운데 별로 위축되어 있지 않다. 햇빛과 따로 노는 것 같다. 노인들은 더위에 짓눌려 거의 헐떡이기 직전이다. 지나가는 길에 어느 할머니가 옆에 같이 가고 있는 친구에게 '난 성격이 더울 때는 더워야 하지 추우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고 자부심에 가득 차서 말한다. 옆 사람이 좋은 생각이라며 칭찬을 거듭한다.
단순한 팩트를 사고방식으로까지 전환하는 할머니의 자긍심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지, 더워서 못 살겠다 하는 것보다 더울 때이니까 당연히 덥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덜 덥고 짜증도 덜 나고 견딜만해지지 않을까. 그래도 이렇게 무더운 것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견디기 힘들다. 체온 조절이 잘 안 된다.
아마도 그 할머니는 더위를 타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땀도 나지 않고 따뜻한 게 좋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줄어들면 체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열 생산량이 감소한다. 혈관의 이완과 수축 기능이 저하되어 체온 조절이 어려워진다. 신체의 전반적인 기능이 저하되면서 체온 조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잘 보이지 않던 고양이를 세 마리나 보았다. 한결 같이 시원한 나무 밑이나 그늘진 곳에서 늘어져 있다. 몸의 힘을 빼면 더위가 덜 느껴지는 것일까. 마주치면 곧바로 피하는데 가까이 다가가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핸드폰으로 잽싸게 사진을 몇 장 찍고 물러났다. 움직이기 귀찮으니 방해하지 말고 썩 물러나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다. 나도 덥다.
그래도 귀여운 옥색눈, 연둣빛눈, 노란빛 눈을 보고 나니 기분이 좋다. 도망가지 않아 좋다. 사진 찍게 그대로 있어 좋다. 실내의 강한 에어컨에 두세 시간 있어서 몸이 냉장되어 살짝 땀이 날 정도만 걸었다. 조금 따뜻해져 체온 조절이 되는 것 같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모두들 사라지고 없다. 내가 쫓아낸 것 같아 미안하네.
평소에 보기 힘든 너희들 셋이난 보았으니 난 대만족이다. 조금 불편했다면 미안하다. 내가 고양이라면 나의 호기심이 참 귀찮았을 것 같다. 그것은 내 죄라기보다 너희들이 귀여움이 죄이다. 잘못해 놓고 예뻐서 그랬다는 추행범과 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다.
더워도 너무 덥다. 습도까지 높으니 온찜질하는 것인가 싶다. 낮에 어디 가기가 무섭다. 예전 에어컨 없던 시절은 어떻게 지냈는지 생각이 안 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요령껏 살아갔겠지만 날씨도 이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온이 발생하기 때문이리라.
60대 아주머니가 밭을 매다 일사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뉴스가 뜬다. 무슨 사정이 그리 급해서 한낮에 땡볕에서 일을 했던 것일까. 그냥 걷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날씨에 일을 했다니 목숨을 걸만큼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얼마나 더웠을까 안타깝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선풍기는 쳐다도 안 보고 무조건 에어컨만 쳐다본다. 이삼 분만 지나면 치솟던 땀과 더위가 금방 가신다. 몇 초 몇 분을 기다리기가 힘들다. 냉수 마시듯 급하게 냉방을 들이켜는 것이다. 아후 살 것 같다 하면서 에어컨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내가 에어컨을 조절하는지 에어컨이 나를 조율하는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유용한 에어컨은 누가 발명했을까. 무조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