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요즘 100세 시대라 하니 사람의 일평생이 100세라 하면 60대가 반고개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60이 넘으면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밀려나는 세대라서 그런 것일까. 60이 넘으면 자기를 뒤돌아 보게 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원한다. 꺾어진 나이에 허망함을 잊기 위한 것일까. 자서전을 쓰고 시를 써서 자비를 들여 출간을 한다.
자손들에게 강제 선물하고 그치면 좋을 텐데 지인들에게 선물을 해댄다. 자신에게는 소중한 글이고 추억일지 몰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그 감정 부담이고 거추장스럽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한 권의 책을 냈다는 것만으로 자신이 훌륭하다는 자긍심이 넘쳐흐른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 때에는 상대방이 읽을 만한 것을 줘야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지인의 전시전에 갔다가 지인의 아트기획자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인사로 끝날 줄 알았는데 아예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대화이면 그래도 들어주겠는데 이건 숫제 강연 수준이다. 인생의 후반부 뒤쪽에 가까운 나이의 그는 자신의 역사를 누군가 열청하기를 바랬나 보다. 기획한 전시에 작가들을 당번으로 정해 하루에 한 명씩 불러들이고 있다. 쉼 없는 그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듣고 있자니 멍해진다.
그도 역시 책을 한 권도 아니고 두 권을 썼는데 그중 시집을 나한테 선물하겠다 한다. 지인의 체면 때문에 면전에 대고 됐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아이고 감사하다고 했다. 자기는 아무한테나 선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도 아무한테나 선물 받지 않는다고 응답해 줬다. 십 년 정도 차이지니 자기가 나의 선배라 하며 선배를 존경해야 한단다. 자신은 자기보다 나이 훨씬 많은 할머니 기획자를 존경한다고 했다고 한다.
저는 선배하고는 대화를 안 하는데요 하고 말했다. 왜냐면 대화는 일방적이 아니리 동등한 입장에서 하는 것이니까요. 웃으면서 특별히 권위적이지 않은 것 같아 대화를 한 거예요 하니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때부터 자기가 이래 봐도 공인에 가까운 사람이라며 기획자로서 십여 년 활동해 왔고 해외전시기획도 겸하고 있고 외무부에 등록된 업체이고 등등 끝없는 이력이 나왔다.
소박하고 성실해 보이는 인상인데 그는 60대의 삶을 되짚어 보기보단 장식하고 있었다. 수많은 작가들을 섭외하면서 무소불위 권위를 휘두르는 게 상상이 된다. 자기는 돈은 필요 없고 작가들을 도우며 키워내고 있다고 한다. 작가들을 돕는 것은 맞을지 몰라도 그들의 아트를 그의 삶에 휘장처럼 두르고 있다. 작가들은 그의 삶의 말년을 허망하지 않게 해주는 장식품이다라고 하면 너무 극단적일까.
그의 인상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가 하는 말을 들을수록 나의 비판은 날카로워진다. 그것을 꾹꾹 누르니 삐져나오고 답답해진다. 하긴 유대인 대학살을 지휘한 장군도 학살현장에 담 하나 치고 그곳에서 아주 평범하게 가족들과 살았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무섭게 생긴 게 아니라 평범하게 생겼다. 그 악행을 강조하기 위해 험악한 인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상은 믿을 수 있는 게 못된다.
그의 시집 속 시는 아직 소화되지 못한 학문적 단어들로 가득하다. 이것도 자기 지식 자랑이네 싶다. 자기가 철학이다 영문학이다 이것저것 공부한 것이 많아 어려울 것이라 한다. 워즈워드나 푸쉬킨의 시는 하나도 어렵지 않던데. 나열하듯 널어놓은 단어들이 각자 따로 놀고 있으니 어려운 게 아니라 어지러웠다.
지인한테는 괜찮은 기획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기획은 잘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림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가격을 작가가 아닌 그가 책정한다고 한다. 호당 가격이란다. 그림은 그림이 중요하지 몇 호인가가 중요하지 않지 않느냐 하니 시장에서 그리 통하니 그렇게 해야 뒤탈이 없다 한다. 모나리자 그림도 그리 크지 않던데 우리나라 시장에 오면 엄청 싸겠네...
결국 지인과 나는 그의 심심풀이 땅콩이 되었다. 지인과 오랜만에 만났으니 이것저것 개인적 수다를 해야 되는데 인사밖에 못했다. 그가 줄곧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결국 마감시간이 되어 나와 다음에 또 보자 잘 가하고 인사로 끝났다. 오래간만에 시간을 냈는데 쓰레기만 안고 온 기분이다.
서로가 주고받으면 수다는 재미난다. 하지만 일방적이면 상대는 쓰레기통이 되어버린다. 말을 아껴 상대가 말할 틈을 주어 대화를 하자. 나의 이름과 사인까지 들어간 그의 시집을 곧바로 버릴 순 없고 한두 달은 책장 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사인을 한자로 휘둘러 멋을 내어 쓴 필체까지 7080들은 어쩜 그리 똑같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