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감을 잃다

서울쥐와 시골쥐

by 오순

한창 일할 중년의 나이에 먼 미래를 위해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전환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화작가를 해보자.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도 작가라는 명예를 보여주고 더 나중에 손자에게 나의 동화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예전부터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장면들을 상상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그 당시에는 TV보다 라디오가 대세였다. 라디오에서 명작동화 시간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달콤한 기다림이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어른들 말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 되는데 이야기책만 읽고 있으면 굶게 된다는 말이었지 싶다.


동화작가는 글과 그림을 동시에 해야 된다. 하나만 해도 되지만 난 둘 다 좋아해서 둘 다를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그림을 배워야 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을 뿐 실제로 전공을 하거나 배울 기회도 없었다. 학창 시절 미술시간 그림그린 것이 전부였다. 더 어렸던 취학 전에는 벽마다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거나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아주 단순한 그림이었다. 동그란 머리에 작대기 같은 몸과 팔다리가 전부이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몰입되어 소란스러운 현실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타고난 재능은 없었다. 미술도구를 갖출 수 없어 그림을 못 그렸던 것 같다. 이야기처럼 그림 그리기도 가난해진다고 했다.


그림 그리기처럼 책 읽기도 현실을 떠날 수 있어 좋았다. 독서와 그림 그리기는 나에겐 현실도피의 이상향이다. 벌어 논 돈으로 학원에 거금을 내고 등록했다. 생각보다 쉬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림은 자신이 있었는데 직업으로 가려니 어려웠다. 마음만 앞서갈 뿐 글도 생각보다 쓰여지지 않았다.


현실적 경제성이 급해져 직업의 전환을 하지 못하고 동화작가는 취미로 남아 갈증만 안고 살게 되었다. 그때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이라는 입장으로 돌아가니 학창 시절처럼 무리를 만들고 도시락 싸와 떠들며 먹기도 하고 뒷담화와 불만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그중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친구가 나를 초대했다.


그 친구는 연예인처럼 얼굴도 아주 작고 예쁘고 날씬한 여자였다. 나이 차가 많이 나긴 했지만 같은 학원생이라 아무 생각 없이 호기심에 따라갔다. 한잔씩 하면서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평소 듣던 이야기와 색다른 것이 재미가 있었다. 허영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을 가면 쓰고 하는 것 같았다.


한 남자애가 나를 보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한다.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좌중이 모두 황당함을 감추려 애쓰고 있다. 누나는 너무 심한 가 그럼 이름에 씨자를 붙이든가 아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이모도 아니고 친척도 아니니 나이차 때문에 애매하긴 하다.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 수다하는 데 갑자기 나이가 의식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순간부터 서서히 내 위치가 애매해졌다. 호기심에 왔다가 젊은 애들만 모이는 클럽에 지팡이 짚고 나타난 할머니 같았다. 나를 초대했던 그 친구는 나의 말들이 재미있다고 솔직 담백해서 같이 놀고 싶었다고 다음에도 계속 오라고 한다.


그 친구도 나처럼 색다른 맛에 호기심이 작동하였던 것 같다. 외모와 세대가 다르지만 직진하는 성격은 맞았던 것 같다. 그 친구를 따르는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이대가 어리다는 게 문제였다. 호기심은 한 번이면 족하다.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주기도 싫고 나도 내가 이곳에 어울린다고 생각도 않는다.


초대는 고맙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들의 모임은 화려하면서도 약간 파티 같은 겉도는 모임이었다. 젊음과 방황과 파랑새를 잡으려는 로망이 그 모임을 추락하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았다. 이름 없는 연예인도 등장하고 가수도 등장하였다.


그때는 그 화려함이 싫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떤 분위기인지 편견 없이 접하고 싶었다. 그 친구는 화려하지만 가까이 보면 성실해서 놀랐던 것처럼 그 모임도 내가 모르는 뭔가 색다른 것이 있질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알았다. 서울 쥐와 시골 쥐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시골쥐 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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