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나태주는 당신의 외할머니 품에서 외할머니의 아들로 살았다.
그래서 친어머니의 애정을 결핍하고 갈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보편적으로 어머니란 그 말만 들어도 좋은 존재지만,
이 좋은 존재가 둘씩이나 되는 건 결코 축복이 못 된다.”
이 글은 2020년 소월시문학상 수상집 나태주의 ‘마음이 살짝 기운다’에 실린, 나민애 문학평론가가 쓴 글이다. 나태주 시인의 딸이기도 하다. 평상시 아버지 성격을 보고 어린시절 양육환경과 연관 지어 쓴 부분이다. 평론가는 아동발달 전문가는 아닐 터인데, 나를 포함한 아동발달심리학자들 아이들 발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애착 형성에 대해 적고 있다. 애착 형성이란,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는 정서적 유대관계를 말한다. 이 글에서 핵심은 “이 좋은 존재가 둘씩이나 되는 건 결코 축복인 못 된다.”이다.
한국의 발달임상학이란 학문을 개척한 김중술 상담가가 있었다. 그가 쓴 ‘사랑의 의미’와 개정판 ‘신사랑의 의미’는 우리나라 성인 애착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대인관계 상담 전문가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과의 상담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어린시절 애착형성이 안된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네 가지를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 나를 사랑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 이 둘이 맞물려야 한다는 점,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느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 했다.
나 평론가가 ‘좋은 관계가 둘이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세 번째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맞물려야 한다는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나태주 시인은 어린 시절 할머니와 살면서 사랑을 듬뿍 받았을 터이다. 그런데 어린이 나태주는 누구의 사랑을 가장 받고 싶었을까? 할머니 사랑을 받으며 할머니와 살고 있지만, 엄마라는 존재가 늘 어린아이 가슴에 그리움으로 크게 자리잡고 있었을 터이다.
할머니가 아무리 사랑해 주어도 그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고, 가슴은 허전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때 채워지지 않았던 엄마의 사랑을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갈구하게 된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딸에 눈에 들어왔고, 예리한 눈과 분석력을 가진 딸은 인간발달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다. 놀랄 따름이다.
엄마의 애정을 결핍하고 갈구하는 이는 나 시인만이 아니다. 숱한 어른들에게 그 모습이 나타나고,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요즘도 젊은 엄마 아빠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 경제생활을 하느라, 할머니나 할아버지, 제3자의 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후에 어른이 돼서 같은 애정 결핍 행동을 보이게 된다.
아이에게 좋은 존재는 한 명으로 서로 맞물려야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에게 좋은 단 한 사람은 가능하면 부모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아이가 가장 원하는 사람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어떤 환경에서라도 아이의 좋은 사람이 되어, 아이와 서로 맞물리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게 육아의 핵심이다.